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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 시간부자 May 27. 2022

시간부자74-②그러니 그대(필사)

1일 1독 같이 하실래요?

<1일 1독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매일 1권을 읽었을 때 나의 변화를 알고 싶어 시작한 프로젝트!

2022.2.9부터 시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1. 읽은 날짜 : 2022.5.23(월)    *74권

2. 작가/출판사/분야 : 박노해/느린걸음/문학

3. 내가 뽑은 키워드(3가지) :   다르다,힘내라 문제아, 반인반수



<필사>

#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별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가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꽃도 별도 사람도 세력도

하루아침에 떠오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좋아질 뿐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조금씩 변함없이 변해간다

(52페이지)



#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 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사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 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57페이지)



# 평온한 마음

자기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폭풍 속을 걸어가는 자의 마음은

늘 평온을 간직하게 되랄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기 위해

이웃의 가난과 고통을 외면하는 자의 마음은

늘 폭풍우를 간직하게 되리라

(63페이지)



# 다 다르다

초등학교 일학년 산수 시간에

선생님은 키가 작아 앞자리에 앉은

나를 꼭 찝어 물으셨다

일 더하기 일은 몇이냐?


일더하기 일은 하나지라!

나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뭣이여? 일 더하기 일이 둘이지 하나여?

선생의 고성에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제가요, 아까 학교 옴시롱 본깨요

토란 이파리에 물방울이 또르르르 굴러서요

하나의 물방울이 되던디라, 나가 봤당깨요


선생님요, 일 더하기 일은요 셋이지라

우리 누나가 시집가서 집에 왔는디라

딸을 나서 누님네가 셋이 되었는디요


아이들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손바닥에 불이 나게 맞았다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어쩌까이, 많이 아프제이, 선생님이 진짜 웃긴다이

일 더하기 일이 왜 둘뿐이라는 거제?

일곱인디, 우리 개사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응께

나가 분명히 봐부렀는디

쇠죽 끓이면서 장작 한 개 두개 넣어봐

재가 돼서 없어징께 영도 되는 거제


그날 이후, 나는 산수가 딱 싫어졌다


모든 아이들과 사람들이 한줄 숫자로 세워져

글로벌 카스트의 바코드가 이마에 새겨지는 시대에

나는 단호히 돌아서서 말하리라


삶은 숫자가 아니라고

행복은 다 다르다고

사람은 다 달라서 존엄하다고

(73페이지)



# 부모로서 해줄 단 세가지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된다

안 되는 건 안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78페이지)



# 얼굴을 돌린다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리라


누구든지 힘없는 사람을 무시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눈길을 거두리라


누구든지 불의한 세력에 침묵하면

하늘도 그에게서 두 귀를 닫으리라


상에서 받을 칭찬과 보상을 다 받은 자에게

하늘은 그를 위해 남겨둔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

(94페이지)



# 기도는 나의 힘

힘 있는 자는 기도하지 않는다

돈 많은 자는 기도하지 않는다

성공한 자는 기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도하지만 기도드리지 않고

그들은 하늘을 부르지만 오직 땅에다 대고

땅 위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기도는 하늘에 닿는다

력한 자의 간절한 기도는 하늘에 통한다

정의를 위해 외치는 기도는 하늘을 울린다


이 지상에 의지할 데  하나 없어 하늘밖에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기도밖에 없는 자의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기도는 땅에서 배반당하지만


하늘에 통하는 기도는 그 가슴에 하늘이 깃들어

마침내 사랑의 힘으로 땅의 권력을 갈아내리라

(101페이지)



# 무엇이 남는가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부자들에게 돈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성직자에게직위를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지식인에게 명성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빼 버리고 남은 그것이 바로 그다


그리하여 다시

나에게 영혼을 빼 보라

나에게 사랑을 빼 보라

나에게 정의를 빼 보라


그래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래도 태연히 내가 살아간다면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135페이지)



# 힘내라 문제아


문제투성이 아이야

문제아로 찍힌 아이야


문제아는

문제의식이 많은 아이

물음을 많이 품은 아이

세상을 달리 보는 아이


늘 문제를 일으켜

모두를 새롭게 일깨우는

너는 미래에서 온 아이


너만의 문제를 품고

너만의 문제의식으로

주어진 세계에 도전하는

너는 창조의 불덩어리


모난 돌이 정 맞는다지만

모난 놈이 세계를 창조한다

문제아가 문제의 세상을 바꾼다


울지 마라 문제아

힘내라 문제아

(243페이지)



# 연필로 생을 쓴다

밤중에 홀로 앉아 연필을 깎으면

숲의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사박사박 연필로 글을 써 내려가면

수억 년 어둠 속에 묻힌 나무의 숨결이

흰 종이 검은 글자에 자욱이 어린다


연필로 쓰는 글씨야 지우고 다시 쓸 수 있지만

내 인생의 발자국은 다시는 고쳐 쓸 수 없어라

그래도 쓰고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건

오늘 아침만은 곧은 걸음으로 걷고 싶기 때문

검푸른 나무향기 가득한 이 밤에

(252페이지)



# 반인반수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일을 해도

나는 반 토막


임금도 반 토막

권리도 반 토막

인격도 반 토막


반 토막 난 내 삶은

짐승이 되어간다


나는 반인반수의 비정규직


언제든 잘려나가고 언제든 정리당하고

문자 메시지 한 줄로 다시 쫓겨나는 나라

정의도 민주주의도 헌법도 인권도

내 앞에서는 멈춰서는 나라

내 나라는 반인반수의 나라


이 땅에서 내 인간은 반 토막이다

정당한 제 밥그릇을 반토막 당한 자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온전한 생이겠는가


나는 반인반수의 비정규직


내 몸의 반쪽은 인간으로 일하고 인간으로 살지만

자본과 국가의 이빨에 물어뜯겨 인간이 죽은 나는

내 몸의 반쪽인 야수처럼 야수의 세계를 찢으리라

(369페이지)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55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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