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PD가 바라본 세상 첫번째 이야기
“깜깜한 밤은 우리를 하나하나 연결시켜 줍니다. 우주의 별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랜스 디스킨 / 깜깜한 도시 커뮤니티 창립자
필자의 PD생활에서 대표작을 꼽으라하면 지난 2011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밤(夜)’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과연 우리에게 깜깜한 밤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현대인의 비인간적인 밤의 모습을 조명한 작품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무대에서도 주목을 받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만들던 시절, 우리는 세계 최초의 깜깜함을 테마로 한 도시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곳은 바로 미국 애리조나 주의 플래그스테프시티(Flagstaff), LA에서 출발해 애리조나주(州) 사막길을 차로 10시간 정도 북동쪽으로 달려가면 나오는 소규모 도시이다.
이곳의 첫 느낌은 충주의 느낌과 많이 닮았다. 캠퍼스 좋은 학교가 있고 온화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걸음도 느릿했다. 중간 중간 큰 잔디 광장이 있는 대학교를 지나 다운타운으로 들어서면 100년 전 느낌을 그대로 보존한 도심광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한가로이 책을 읽거나 연인들은 싱그러운 대화를 하고 아이들은 조그만 철봉에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연신 까르르 댄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저녁 무렵, 사막의 중간에 있는 도시라 지평선 사이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멋진 장관이었다. 밤이 되자 도시에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 또한 석양에 버금갈 만큼 장관이었다. 마치 느릿한 할아버지 요정이 마술봉으로 불을 켜듯 도시 전체에 약간 어둡고 따뜻한 주황빛의 조명이 순서에 따라 켜지기 시작한 것이다.
따뜻한 색감의 주황빛이 빨간 벽돌의 건물들을 물들이자 묘한 안정감이 느껴지면서 이국의 풍경은 이내 휴식이 가능한 심리상태를 만들어 주었다. 그때 우리는 시내에 위치한 미국의 전형적인 햄버거 따위를 파는 레스토랑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이런 포근한 도시를 만든 장본인 랜스 디스킨, 깜깜한 도시 창립자였다.
재미난 점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생면부지였던 우리 스태프 모두 그 사람을 알아봤다는 것, 까만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흰색수염이 멋지게 난 그리고 약간 살집이 있는 랜스의 첫인상은 이 도시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특히 고요하게 내려다보는 눈빛은 마치 여기의 가로등처럼 따뜻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는데 첫인사 이후 그의 목소리에서 더욱 그런 느낌이 진해졌다.
그가 이렇게 깜깜한 도시를 만들게 된 배경에는 도시의 천문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로웰(Lowell)이라는 천문학자의 이름을 따 만든 이곳 천문대는 도시의 야트막한 산위에 자리 잡은 소규모 천문대였는데 실제 천문학자 로웰이 서부개척시대에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별보기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해서 아예 이곳에 터를 잡고 천문대를 지은 것, 그래서 100년이 훌쩍 넘은 천문대가 이곳의 명소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이 천문대에 대한 애정이 특히 깊었는데 천문대나 천문학자 로웰이 별을 관찰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도시의 초입 혹은 거리의 낙서까지 그의 역사를 새겨 놓았다.
그런 도시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1970년대에 들어 가로등과 네온사인으로 도시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는 천문대에서 별 관측을 못할 정도의 지경에 이른 것, 이에 지역 환경운동가였던 랜스가 20대의 젊은 혈기로 깜깜한 도시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이후 이곳 플래그스태프에서는 가로등 조도 낮추기, 가로등 갓 씌우기, 네온사인 배경색 제한, 쓰지않는 전기 켜지않기 등 어두운 밤하늘을 지키기 위한 자발적 운동이 벌어졌고 80년대에 들어 이내 조례를 제정하여 세계최초의 깜깜한 밤하늘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랜스가 우리 취재진을 데리고 간 곳은 버팔로 파크라는 도시외곽의 공원, 밤 10시를 넘긴 시각, 헤드라이트를 끄고 눈이 어둠에 적응한 순간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바람소리와 함께 하늘에선 은하수가 웅~웅~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실제 우리 스태프(카메라맨, 현지 코디등) 대부분은 밤하늘은 그냥 까만색인줄 알았는데 그곳의 하늘은 까만 틈이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쏟아질 듯한 별빛이 흩뿌려져 있던 것...
이상하리만큼 복받치는 심장이 감동이라는 느낌으로 전이되고 광활한 우주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인 나 자신을 위해 저 우주가 돌고 있는 것 같은 역설적인 기분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 기분의 장단은 이내 저 반짝이는 은하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들을 생각하게 하고 그 영혼의 장단에 맞춰 함께 댄스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린 시절 이런 느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던 랜스 디스킨, 그의 나이 60을 바라보며 매일 이런 감성의 공기가 가득한 곳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고 한다.
실제 랜스의 이런 노력 덕분에 지금도 플래그스테프에는 다른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별이라는 자연조명이 사람들을 연결시킨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한 빛 공해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2012년 빛 공해 방지법을 제정하여 도시의 조도 낮추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아이들은 깜깜한 밤하늘을 잊고 살고 있다. 심지어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깜깜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낙후되고 덜 떨어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다. 문명의 이기인 조명을 완전히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도한 조명을 버리고 또 이런 과도한 밝음이 빼앗아간 감수성을 되찾자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만든 조명 때문에 밤이라는 광활한 감성의 시간을 이성의 시간 혹은 노동의 시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밝은 24시간 사회가 우리를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취재 중 만난 어느 노동자의 파업현장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의 요구는 단 한가지, “밤에는 잠 좀 자게 해주세요”였다. 어쩌면 그 소리에 이 밤 나도 잠 못 이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