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랍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Nov 20. 202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죠쌤이 이 책은 마지막 몇십페이지가 중요하고 정말 휘몰아친다고 했는데 진짜 그랬다. 어류라는 범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폭풍처럼...

결국 어류는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나온 종 개념이 아니고(그러니까 분류학적으로 단계통군에 속하지 않고) 마치 원생동물처럼 측계통군에 해당하며, 인간이 위대해보여야 했기 때문에 어류의 다양성은 가볍게 무시돠어 왔다는 것으로 이해.

여기서 어류는 1) 단계통군이 아님 2) 어류 내의 수많은 다양성들은 결국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무시되고 단순화됨 3) 어류라는 지극히 불완전한 범주! 라는 측면에서 아래의 것들이 떠올랐다.


(암튼 단순히 과거의 뒤죽박죽인 기억들에 의존해서 책에 대한 감상을 쓰는 것이니 틀린 사실이 있다면 너그러이 봐주시고 댓글로 정정해주신다면 환영입니다.)



1 원생동물이 측계통군이라는 사실


오래 전부터 생물 과목의 분류 파트는 (고등학교+대학교 교양 생물 수준에서일 뿐이긴 하지만) 어쨌든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 피트 시험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측계통군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어서 너무 신기했다.


여태 원생동물도 균류처럼 특정이 가능한 하나의 범주같은 것으로 알았는데, 그보다는 공통조상에서 진화한 종들 사이에서 따로 분류할 수 있는 것들을 빼낸 다음 남은 것들을 죄다 모아서 원생동물이라 퉁 쳐서 부르는 것에 가깝다니.


그런 식으로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진화한 종들 중 일부가 다른 종으로 진화하고 남은 종들을 묶어 측계통군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 개념을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원생동물이 유독 종류도 다양하고 공통점으로 묶기도 어렵다고 느낀 것도 그때문이란 걸 그 때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책에 따르면 어류도 원생동물처럼 측계통군에 속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물에 사는 척삭동물 중에서 육지로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진화한 양서류부터의 종들을 빼면 대충 그게 어류라는..! 아! 원생동물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물고기도 결코 전과 같은 방식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


2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다양성

이건 2)번의 ‘다양성 무시’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느낀 부분인데, 냇지오 잡지에서 오래 전에 본 연구라 레퍼런스는 다시 뒤적여서 찾아봐야 하지만... 백인들이 인종을 간단하게 백인, 흑인, 황인으로 나눴지만 실제로는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지역들에서 오랜 기간 고립된 채로 수많은 인류가 존재해 왔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흑인들 간의 다양성이 크다고.


백인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인종을 나누는 것이라면 흑인들 사이의 다양성은 가시적인 곳으로 끌고 올 필요 자체가 없었을 것이고.. 이해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물론 비단 흑인들 간의 차이 뿐 아니라 (brown이라고 부르던데) 인도-파키스탄 계열 사람들이나 뭐 셀 수 없는 뭉뚱그려진 범주가 있겠지만.

어류라고 불리는 다양한 종들 중에서도 턱이 없는 종 부터 폐와 같은 기관이 있는 종까지 매우 넓은 다양성이 있지만 인간은 이 모든 종들을 단지 물에 살고 헤엄을 치는 등의 몇 가지 특징들로 '어류'라고 단순히 묶어왔다는 것에서, 인류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어느정도 고의적으로 묵살되어야 했다는 점에서,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흑인들을 '흑인'으로 묶은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체로서의 인간을 정의하기 위한 어류의 타자화?)


3 여성이라는 범주, 동물 종이라는 범주

어류를 말함에 있어서.. 단일한 종으로서 어류는 없지만 물고기라는 범주 자체를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범주'라는 것은 꼭 명확한 경계를 가진 채로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


여기서 진화론이 가져온 '종' 개념의 변화가 떠올랐는데.. 결국 '토끼'라는 종은 토끼라는 완벽한 이데아가 있고 현실의 토끼들은 그것의 모사인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시간적 축을 도입했을 때, 멀리서 보면 무수한 변이들로 이루어진 진화의 과정 안에 놓여있는 수많은 개체들이 어떤 비슷한 공통점을 갖고 있을 때, 경계가 불완전하지만 그것을 '토끼'라고 부를 수 있다는,, 진화론이 가져온 종 개념의 변화에 대한 것. (유명론적 관점의 종 개념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더 알아봐야 할 듯 하다)

그리고, 젠더를 공부하며 '여성'의 경계를 해체하는 작업들을 접하면서, 여성이라는 범주 자체에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여성이라는 성별의 경계가 불완전하더라도 여전히 (불완전함을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여성으로서의 범주는 때로 효과적이고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는 논의를 본 것이 기억난다. 여성이라는 불완전한 범주도 자매들의(어디까지가 자매인가의 경계가 불확실하더라도)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 암튼 자매들이여 연대하라는 구호는 여전히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레퍼런스가.. 뭐였는지... 알 것 같은 분은 댓글좀..

그러니까 엄밀히 말했을 때 분기학적인 관점에서 '어류'는 존재하지 않을 지 몰라도, 그리고 ‘어류’라는 분류 자체가 인류의 오만함을 나타낸다고 할 지라도, 물고기라는 어떻게 보면 실용적인 범주 자체를 개개인의 인간의 마음 속에서 폐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물고기가 결코 이전과 같이 보이진 않겠지만? 좀 더 풍부하게 물고기를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어류라는 범주가 불완전함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은 찾아왔건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