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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Aug 10. 2015

너의 의미

Thanks for being there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지금껏 살아오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하늘을 멍하니 응시하는 횟수가 늘었다.   

시시각각 나의 감정상태에 따라 그 하늘에 별별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게 한 마디 말을 건네주는 것도 아닌 그 존재가 큰 위로가 됨을 깨닫게 되었다.

말 못할 고민,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  

처절한 그리움,  

그리고 나만의 독백들...  

내 그늘진 부분들을 묵묵히 품어주는 하늘로 인해 마음에 따스한 볕이 들기 시작했다.  

으례 또는 당연시 여기는 대상이 오히려 내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늘 함께이고 너무 편해 망각되는 존재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흔을 넘긴 직후였던가? 또렷한 기억은 없다.

비가 오던 어느 날이었던 듯 하다.

며칠간 출타한 남편없이 간만에 혼자 맞은 주말이었다.

오랫만에 혼자라는 어색함에서 벗어나려고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었다.

싸하고도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진한 블랙커피 향이 비내리는 아침시간의 운치를 더해줬다.

그러던 중 한 순간 볼륨높인 음악선율이 잊혀져 버렸다.  

갑자기 검은 숯구름들이 세상을 삼킬 듯한 엄한 표정으로 몰려들어 내 시선을 압도한 것이다.

순식간 바깥 세상은 짙은 먹물을 흠뻑 마신 붓 한 자루가 거칠게 한 장의 한지 위로 미끄러지듯 온통 검은 색조로 물들어갔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커다란 유리창 앞으로 이동해 있었고, 온 몸이 굳은 듯 미동도 없이 넋놓은 채 먹물 번지는 하늘을 주시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생전 이처럼 세상이 성난 어둠 속에 갇혀버리는 광경을 접해본 기억이 없었다. 사람이란 두려운 것을 접하는 순간 숨거나 피하려는 반사적인 반응을 하기 마련인데 그날 나는 그 하늘의 거부할 수 없는 마력에 끌려 한 폭의 수묵화 속으로 들어와 서 있는 묘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세상의 최후가 이런 모습일까라는 공포와 두려움. 더불어 역시 명불허전 하나님 최고의 창조물이로구나 이처럼 마법과 같은 작품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다니 감탄과 신비로움. 이들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강렬한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집 거실 창 밖으로 먹물 먹은 하늘을 비집고 한 줄기 빛이 스며든다

거실을 수놓던 클래식 선율은 이미 잊혀진 지 오래였다.

시각적 충격으로 청각에 일시적 장애가 온 모양이었다.

머리는 텅 빈 느낌이었지만 가슴에 형언할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꿈틀대는 기분이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뜨겁게 용솟음쳐 올랐다.

세상 끝이 이럴까라는 두려움에 타향생활 속 꾹꾹 억누르며 잠재워온 그리움이 폭발했던 걸까...

검은 구름 사이를 비집고 빛이 스며듦과 동시에 내 마음에도 안도감이 깃들었다.

칠흙같이 어둔 하늘 아래 풍경의 스산함이 한 순간 멜랑꼴리한 그리움으로 승화되는 듯 뭉클함이 일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인데 저 하늘이 대체 나에게 무슨 마법을 건 걸까?  

평소 두려움을 싫어하는 내가 어둠으로 날 삼키려는 듯한 하늘에 매료되어 숨지 않고 그 광경과 대면해 서 있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 후부터인가보다, 하늘의 일거수일투족에 촉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살며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는 행위는 하루 수십번씩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는 의식 중에도 하늘을 수시로 찾게된다. 특히 비오는 날엔 영낙없이 거실 발코니를 향해 난 커다란 창곁에 서서 하염없이 '너'를 응시한다. 신선하게 내린 블랙 커피 한 잔 벗 삼아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보노라면 그 곳에 내 인생이 흐르는 듯 하다. 마음의 짐이 무거울 수록, 그리움의 향기에 취할수록, 삶의 무게에 짖눌릴 수록 나는 대화를 나눌 상대를 찾기 보다는 하염없이 하늘을 마주보고 서 있는 시간을 택한다. 해바라기가 해만을 쫓듯 나는 하늘을 쫓는 하늘바라기를 자처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친구 삼기까지 내가 접해 있는 환경이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처럼 빌딩 사이로 조각난 것이 아닌 온 것으로 나를 바라보는 하늘과 마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음이 큰 기쁨이고, 값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천 수만가지의 표정과 뛰어난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하늘의 매력에 날마다 흠뻑 빠져 지낸다.

나이가 들수록 하늘을 쳐다보는 횟수는 비례하는 것일까...

내 핸드폰에는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하늘의 풍광이 수십장씩 담겨 있다.

같은 위치에서 관찰하는 풍광인데도 늘 다르고, 항상 색다르다. 그래서 볼수록 더욱 신비하다.

구름이 흘러 위치가 바뀌고, 그 모양이 흐트러졌다 다시 모아지고, 바람이 결을 만들고, 사라진다.  

새가 비상했다가 롤러코스터와 같이 순식간 추락하듯 내려 앉기도 하고, 방글대던 해가 한 순간 숨박꼭질하며 숨어버리기도 한다.

뭐니뭐니해도 하늘의 표정과 색감이 자랑하는 가장 큰 매력은 유니크함이 아닌가 싶다.

과연 하늘보다 훌륭한 표현력을 가진 배우가 또 있을까?

때로는 봄햇살 등에 지고 개구장이 어린아이처럼 수줍게 웃는가 하면,

때론 여름날 대나무살같은 장대비 내리 꽂는 심통을 부리기도 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 뿜으며 가을 들판의 결실을 칭찬하는 으젓함도 잊지 않는다.

실연의 아픔을 떠안은 청춘처럼 겨울 어둠 속으로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모습은 연민마저 일게 하니...

그 무궁무진한 표정의 변화에 따라 내 마음도 살랑살랑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희노애락의 경계를 마구 넘나든다. 너는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지만 난 너에게 어떤 존재일까...


색감으로 선사해주는 신비감도 무한하다.

사소로운 조건마저도 변신의 도구로 사용하며 수천 수만가지의 얼굴로 변장하는 마술사.   
변화무쌍한 표정과 색감은 하늘이 영원한 신비주의를 유지케 하는 최고의 무기일 것이다.  

독일 하늘은 무채색을 즐겨 입어 살짝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  

화려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하루에도 수 표정  패션쇼 도전하 하늘.  



그럼에도 주연급만 고집하지 않는 배려와 겸손이 돋보인다.  

매일 번복되는 자기낮춤의 시간 기꺼 감수함으로써 타 대상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 주는 것이다.

강렬한 존재감의 태양이 대활약하는 무대.

인류가 수많은 별들의 낮은 속삭임에 설렘을 품을 수 있도록, 은은한 달무리 바라보며 머나먼 고향의 안녕을 고하는 징한 순간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늘은 검은 상복을 준비해 입는다.


해와 달, 그리고 수많은 별들과 새들의 놀이터가 되어주는 하늘.

그들이 공생하여 주기에 하늘은 때로는 적나라하게, 때로는 은근히 쉼없이 변화를 꾀하며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하늘의 품이 없었다면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었으리요...

하늘을 보며 깨닫는다, 자연처럼 더불어 사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하늘은 나에게 엄마의 품과 같은 존재이자, 고향땅과 같은 포근함이다.  

자식이 아무리 늙어도 늘 곁을 지켜주고픈 부모님의 심정처럼 한시도 변함없이 내 머리 위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봐 주는 그 눈빛. '너'로 말미암아 나는 먼 고국에 계신 부모님의 마음을 읽는다.

종종 서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외국생활을 견디게 하는 한 줄기 희망은 '언젠가 돌아갈 고향이 있다'라는 믿음이다. 태어나고 그리운 이들이 살고 있는 고향 그리고 수많은 그리움을 잠재우고 내가 선 이 땅은 대륙조차 다른 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머리 맡 위로 펼쳐진 저 하늘 만큼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저 하늘이 먼 훗날 나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려나...


실로 너의 의미는 나에게 참으로 다채롭다;

하늘은 드높은 기상이며, 힘찬 희망이다.    

잔잔한 그리움이 깨어 뒤흔들렸다 잠드는 공, 

내 과거의 청사진들이 흐트러진 채 춤을 추는 추억의 공간, 

보고픈 누군가를 향해 전해지지 않을 편지를 써 내려가는 일기장과 은 공간이다.   

내 삶의 깊은 한숨과 버거운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어갈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

혼자 품고 싶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켜도 부끄럽지 않을 나만의 비밀스러운 은신처.

내 인생의 희노애락을 주제로 한 작품이 담긴 스케치북과 같, 

마흔 다섯해를 살아온 주름과 한숨진 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그런 존재이다.


나는 널 마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때론 마주하고 있기에 더 서다.  

그리고 항상 고맙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날 품어줘서!

첫사랑처럼 은밀하게 스며들어 내 마음을 모두 차지한 '너'.

더 이상 남남으로 갈라설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린 존재.

그러하기에 나는 너와 영원히 평행선을 이루며 여생을 동고동락하고자 한다.

비록 너와 나, 동일선상에 설 수 없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에 함부로 넘봐지지 않는 상대, 그러나 늘 함께여서 어색하지 않고 편안한 친구로 늘 그랬듯 앞으로도 그렇게 함께 하자...  

내 고백을 접한 지금 바로 이 순간만큼은 하늘아 너도 설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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