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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Oct 30. 2016

흔들리는 계절

추억이 주는 위로

계절의 변화에 앞서 마음의 준비까지 필요한 걸까?

불쑥 찾아온 가을이 여전히 생소한 10월의 끄트머리.

열어 놓은 창틈을 비집고 꾸역꾸역 실내로 접근 해드는 공기가 싸하다.

찌푸린 하늘이 뿌려대는 가을비가 운치 있다기보다는 청승맞다.

올해는 유독 계절의 변화가 익숙지 다. 

해가 갈수록 계절의 흐름이 삐그덕 거리는 듯 느껴지는 건 유독 나뿐이 아닐 다.

하나의 연결점을 통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진행되기보다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 마냥 급작스럽게 다가와 혹스럽다. 계절의 정체성도 혼동스럽다.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경계선이 어느 메인 지  짐작할 수 없었고, 여름은 굴곡이 많았다. 언제 가을이 다가온 걸까 의아하던 차 기류 흐름은 어느새 겨울에 가까워 있었다. 해의 길이도 싹둑 잘려 나가고, 진즉 패딩 외투를 꺼내 입은 사람들이 나타날 정도로 정체성이 혼란스럽던 과도기.

기온이 다소 회복될 듯 말 듯, 가을과 겨울을 줄넘기 넘듯 넘나드는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천지에 노릇노릇 단풍이 물오르는 사랑스러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언젠가부터 너무도 당연스러운 현상임에도 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지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만큼 자연의 섭리가 파괴되어감을 역설해주는 것이겠지. 으레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구나 이렇게.


계절의 정체성?

혼란스러워도 괜찮다, 지속되는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러나 독일은 가을과 겨울이 두려운 대상이다. 일상 최대의 적이다!

회색 하늘 그리고 지겹게 그칠 줄 모르는 비.

해의 존재 여부에 의문이 생기기 일쑤다.

무의식 중 깊은 우울증에 빠져 헤매게 된다.


독일과 스위스를 잇는 60km에 달하는 고타르트터널이 있다. 세계 최장인 그 터널 속을 달리노라면 "얼마나 더 가야 끝이지?" 절로 빛을 기다리게 된다. 하물며 언제 어둠이 끝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갑갑함 또는 불안감이 조성된다.  독일의 하반기 날씨는 "줄곧" 어둡다, 굳이 닮을 필요 없건만 이들의 국민성을 닮아 일관성 있게 주욱. 이 나라에서 세계적 유명 철학자가 수없이 배출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절로 깨달아진다. 중세 도시의 칙칙함에 반사된 젖은 하늘 아래 혼자 사색하거나, 어우러져 토론 나누기에 최적인 이 나라, 독일.

살기 좋은 선진국이면 뭐해? 독일의 이 시기는 주로 끔찍하다, 그래도 가끔 해가 나오면 살 만하다.



이런 날들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활력소는 '추억'이다.

어린 시절 나는 가을이란 계절에 딱히 애정이 없었다. 제일 하는 여름이 기우는 시기이고, 고독과 낭만을 음미하기엔 너무 애송이였기에. 추워도 겨울은 스케이트를 타며 손을 호호 불어가 깔깔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이면 떠오르는 애틋한 추억이 있다. 30년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 과 초등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 그 날의 하늘. 바로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가을에 대한 애틋한 추억 속의 주인공이다.

사계의 특징이 또렷했던 시절, 매년 가을운동회 때마다 천고마비의 계절을 뒷받침하는 맑은 날씨는 맡아 놓은 당상이었다. 그 시절 내가 올려다본 하늘은 황홀하리만치 선명하고, 드높았다. 그 깨끗하고 맑은 푸르름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한 적도 없었고, 그 어떤 기대가 있어 올려다본 기억도 아니건마는 그 하늘을 향한 그리움은 쉬이 해소가 되지 않았다. 왜? 이후 그 기억 속 같은 하늘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약 2~3년 이어진 가을 하늘에 대한 기억의 연장선에는 점차 고층 빌딩이 들어서며 조각난 하늘이 퍼즐 맞추듯 시야를 채워갔고, 별보기 운동하듯 학교와 집 사이를 쳇바퀴 돌 듯 지내노라니 하늘 올려다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다.


독일은 날씨는 후져도 자연은 진정 복 받은 나라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온 사방 천지에 살아 숨 쉬는 숲과 들판, 시내 중심가에도 드문 고층건물. 이 값진 환경 속에서 비록 횟수는 드물어도 푸른 하늘이 내 품으로 안겨 오는 날들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 어린 날 올려 본 그 하늘이 안겨 준 감동, 가슴을 파고든 짜릿한 전율만큼의 서프라이즈는 아직까지 없었다. 왜일까? 70년대 말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 서울의 환경이 아무리 드넓은 녹지대와 보전된 환경을 자랑해도 현대의 독일과는 비교조차 안될 만큼 깨끗해서? 확신이 없다...


나는 이렇게 반문해본다.

그때만큼 내가 순수하지 못한 때문이 아니냐고.

초등학생에게도 때론 시험, 성적으로 인한 부담은 있었지만, 그 후로 다가온 삶 속 해마다 가중되어가는 무게와 비례해가는 현실의 어둔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이었으니 내 안은 순백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현재 가까스로 생존해 있는 감수성마저도 순수의 범위를 많이 벗어나 있을 테니 마음밭이 그 때와 비교될 수 없이 상해있겠지.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아이들은 때가 차면 바람대로 어른이 되고, 성인이 되었음을 즐기려는 찰나 삶의 현주소에 맞닿아 인생의 주인공이 봄인지, 가을 인지도 잊은 채 꾸역꾸역 살아지게 된다. 그렇게 도달한 중년. 내리막길로 접어든 지금, 세상 물정 모르고, 소소한 것에도 해맑게 웃고, 통곡하듯 울 수 있던 순수의 시절. 순백 그 자체가 나의 정체성이었던 그때가 하염없이 그리워진다.

내 기억은 생생하게 그 날을 소환해 들인다.

어느 가을날 하늘 아래 펼쳐진 학교 운동장.

작은 아이 하나가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뭉게구름 한 점 없어 단조로워 보이기까지 한 그 하늘을...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 속으로 시리도록 푸르나, 한없이 따뜻한 가을 하늘이라는 스케치북 위로 운동회 광경이 녹아든다. 하늘 그리고 터질 듯 말 듯 살짝 벌어진 청팀의 커다란 박이 휘영청 거리는 풍경 위로 동심 속 아이들의 하하호호 웃음 진 낭랑한 소리가 덧입혀진다.



오래 기억할 수밖에 없던 그 하늘의 감동을 나는 지난 추석 나폴리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초승달처럼 휜 비탈길 언덕 위에서 반짝이는 해수면과 알록달록한 지붕들 위로,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그 느낌의 하늘이 나를 불렀다. 순간의 울컥함, 그리고 촌스러울 만치 치밀던 감격...

먼발치 바다 위에는 폼페이를 화산재로 덮어버린  베수비오산이 유유자적 떠있고, 그 전면으로 작렬하는 가을 햇살이 수면 위로 반사되어 다이아몬드 마냥 반짝대는 바다가 있었지만 그 전체적인 풍광이 내 눈물샘을, 오랜 그리움을 자극한 것이 아니었다.

지중해의 색채를 품은 하늘의 순수함!

기억 속과는 달리 구름이 유유자적 노닐고 있었지만 느낌만큼은 과거 속으로 나를 타임슬립 시켜주는 듯했다.

최상 조건의 씨,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던 자연경관 덕이었을까?

아니, 마음밭이 순수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회인이 된 이래 처음으로 고된 일상을 완벽히 잊고, 한 명의 자연인으로써 보이는 것들을 순수히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일은 어떤 일이 다가올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새삼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새 걱정, 근심, 욕심 없이 해맑게 살았던 동심으로 돌아가 있었던 나, 시야에 비추이는 모든 풍광에 그 시절의 순수성이 반영되어 감동과 감격이 덧 입혀진 것이리라. 살면서 수도 없이 꾸밈도, 거짓도 없는 하늘과 대면하지만 내 마음이, 내 감성이, 나의 순수함이 바래고, 메말라 시야가 가리워진 탓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아닌지 내면 정비부터 실시해봐야겠다.

내 안의 순수를 욕심내 되찾아야겠다.

메말라가는 감성을 회복해 아름다운 세상이 주는 감동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계절의 흐름이 뒤죽박죽 되어도 불평 말고, 자연도 인류에 의해 고통당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자.   

흔들려도, 혼란스러워도 그 자연으로부터 얻는 위로가, 따뜻한 추이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됨을 잊지 말자. 겨울이 다가온다. 서머타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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