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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인 Feb 22. 2022

생각이 고이지 않아서

사유 노트 1

  언젠가부터 글 쓰기가 힘들어졌다. 생각이 떠올랐다가도 어느 순간 막히고 제자리걸음을 하다 뒷걸음질하고, 좋은 단어를 골라 썼다고 생각한 문장도 다시 읽으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기 일쑤다. 며칠을 노곤하게 적어 내려 간 글들도 내놓기 부끄러워 접어둔다.  예전 글들을 돌아보면 얼굴이 붉어질 만큼 유치하고 부족해 보인다.  한동안은 바쁜 내 일상을 탓했다. 글도 쓰고 책도 만들 만큼 강하지 못한 체력도 탓해보았다. 엄격하게 내 글을 짚어주는 선생님 탓도 해보았다.  그러나 글 잘 쓰는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결국 글 쓰는 일을 접어두고 한동안 책만 읽으며 지냈다.

 

 이건 내 생각의 문제다. 모처럼 좋다고 느껴지는 몇 문장을 적어두고도 구태의연하거나 유치하거나, 늙어 보여  지워버리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성에 차지 않아서다.  어떻게 보면 능력치는 낮은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기대치와 욕심만 높은 꼴이다.  심지어 한 글자도 안 쓰고 보내는 날도 있었다. 겨울을 보내며 몸살을 앓아서, 크리스마스라서, 설날이라서, 내 생일이어서...... 이유는 다양했다.  물론 변명이었지만. 변명이라는 걸 나 자신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시간을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되묻고 또 물으며 보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어렸을 때는 그냥 썼다. 생각이 떠오르면 내용도, 주제도 없이 단편소설을 완성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글 쓰기를 접어두고 미국으로 간 이후 글 쓰기는 나에게 갈망이 되었고 나는 내내 갈증에 허덕였다. 그때는 살고 싶어서, 살기 위해 글을 썼다.  글을 쓰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좋은 글을 맘껏 쓸 수 있을 줄 알았었다. 한글로 된 책과 문자와 수많은 재료들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내 갈증이 풀릴 줄 알았다.  막상 풍요를 마주한 지금은 글이 더 안 써져서 고민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을 꽤 했었다.  한국으로 막 돌아왔을 때, 나는 생막걸리를 혼자서 한 병 다 마시고 다음날 숙취로 무척 고생한 기억이 있다.  알코올을 잔뜩 마시고 해독시키지 못해 고생하는 것처럼, 나는 풍요로운 글자들을 욕심껏 먹느라 내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작은 것들이라도 좋으니 꼭꼭 씹어 먹자고 새삼 다짐하는 이유다.


  작은 출판사를 열고 최근에 '장르소설 공모전'을 시작했다.  마감일이 4월 30일인데 벌써 응모작들이 도착하고 있다. 장르소설 특성상 현실에 없는 이야기들이다 보니 신선한, 상상을 초월하는 소재를 가져온 작품이 많다.  나는 그들의 작품에 놀라고, 감탄하고 부러워한다.  깨끗하고 뜨거운 그들의 창조성에 감동한다. 그들의 에너지를 받는 것만으로도 나는 도움을 얻고 있다. 상금도 걸려있지 않은 공모전에 거리낌 없이 작품을 투척해 주는 작가님들처럼  나도 작품을 써야겠구나 오랜만에 열망이 떠돈다.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노트를 열고 단어들을 적어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내 몫의 문장들을 나열해 본다.

작지만 또박또박 써 본다.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줘 본다.


'사 유 노 트.'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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