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두려움
― 쓰고 싶을수록 멀어지는 손
쓰지 못하는 날이 계속될수록, 나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부터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의심은 자연스럽게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정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뿐일까.
기도하듯 책상 앞에 앉아보지만, 손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말을 걸고 싶을수록 침묵은 길어지고, 문장을 찾으러 갈수록 마음은 멀어진다. 그럴 때 나는 창작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법을 잊은 것처럼.
두려움은 늘 경건한 얼굴로 나를 흔든다.
“지금 쓰는 것이 정말 너에게 맡겨진 이야기냐”
“이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을 자격이 있느냐”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자주 움츠러든다. 감히 써도 되는지, 감히 말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돌아보면, 성경 속에서도 침묵의 시간은 언제나 길었다.
말씀을 받기 전의 광야, 부르심 이후의 기다림, 응답이 없는 밤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가장 많이 흔들리고, 가장 깊이 질문했다. 나 역시 그 시간 안에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자주 ‘잘 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다른 기도일지도 모른다.
지금 쓰지 못하는 나도 받아들이게 해달라고.
결과 없는 시간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게 해달라고.
글을 쓰는 나만이 아니라, 쓰지 못하는 나 역시 부르심 안에 있다는 것을 믿게 해달라고.
침묵 속에 있는 동안에도 마음은 계속 움직인다.
떠오른 장면 하나, 사라지지 않는 문장 하나, 설명할 수 없는 감정 하나가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날도 있는 것이다. 오늘은 기록하지 않았을 뿐, 내 안에서는 이미 쓰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믿음은 늘 즉각적인 열매로 증명되지 않는다.
창작도 마찬가지다.
손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나를 벌하기보다 묻기로 한다. 지금은 쓰는 시간이 아니라, 들으라는 시간은 아닐까. 문장을 만들기보다, 마음을 비워두라는 신호는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고백한다.
쓰지 못하는 날에도 나는 여전히 부르심 안에 있다고.
침묵 속에서도 하느님은 나를 작가로 부르고 계신다고.
지금의 멈춤이 끝이 아니라, 다음 문장을 위한 숨 고르기일 뿐이라고.
쓰는 일은 내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허락과 타이밍의 문제였다.
그러니 오늘은 손을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맡겨본다. 다시 쓰게 될 날이 올 것을, 그때의 문장은 지금의 침묵까지 포함한 이야기일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