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가장 정확한 언어일 때

by 영인


모든 장면에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설명하려 들고, 오해를 두려워해 덧붙이고, 관계가 멀어질까 봐 서둘러 해명한다. 말은 안전장치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말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진심이 흐려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어떤 저녁이었다. 창밖으로 빛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고, 식어가는 차 한 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해야 할 말이 있었지만, 그 말이 정확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입 안에서 문장은 몇 번이나 형태를 바꾸었다가 사라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말하지 않는 선택을 해보았다. 침묵은 어색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침묵을 회피로 오해한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 감정을 숨기는 기술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모든 침묵이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침묵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언어다.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이 있고, 설명하는 순간 작아져 버리는 진심이 있다. 사랑도, 미안함도, 기다림도 그렇다. 말을 얹는 순간 가벼워질까 봐 차마 꺼내지 못하는 마음들.


나는 오래도록 말을 믿어온 사람이다. 글을 쓰고, 문장을 고치고, 한 단어의 위치를 고민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더 아이러니하다.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 결국 말의 한계를 먼저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무리 정확한 문장을 찾아도, 그 문장이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그곳에서는 침묵이 대신 서 있어야 한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이고, 존중이며, 상대의 시간을 허락하는 태도다. 상대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물러서는 일. 내가 이해했다고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일. 어떤 슬픔 앞에서는 위로의 말보다 조용히 곁에 앉아 있는 것이 더 깊은 연대가 되기도 한다.


한 번은 누군가에게 긴 설명을 준비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적이 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같은 공기를 나누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은 전해졌다는 것을. 침묵은 무능이 아니라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은 때로 방향을 갖지만, 침묵은 깊이를 갖는다. 방향은 빠르게 닿지만 쉽게 흩어지고, 깊이는 천천히 스며들어 오래 남는다. 우리는 늘 빠르게 닿는 쪽을 택해왔다. 하지만 오래 남는 것을 원한다면, 가끔은 조용히 있어야 한다.


나는 이제 모든 장면을 말로 채우지 않으려 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억지로 해명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믿어보기로 했다. 말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관계는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침묵이 오해가 아니라 신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침묵은 두려운 선택이다. 내가 틀렸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고, 마음이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순간을 믿어보기로 했다. 말 대신 눈빛을, 변명 대신 시간을, 설명 대신 존재를 내어놓는 순간을.


모든 장면에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많은 것을 전한다.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한 언어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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