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편을 들지 않기로 했다

by 영인

소설을 쓰다 보면 자주 이런 질문을 듣는다.
이 이야기에서 누가 좋은 사람인가요, 누가 나쁜 사람인가요.

처음에는 나도 그 질문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인물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를 선과 악 중 하나에 놓는 일이니까. 이야기 속에서 방향을 정해주면 독자는 덜 헤맨다. 나 역시 그렇게 써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그 방식이 점점 불편해졌다.

선과 악을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한 장면만 강조하면 된다. 누군가를 희생시키거나, 누군가를 구하게 만들면 독자는 금세 마음을 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나뉜 인물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이야기 속에서는 또렷해 보였지만, 페이지를 덮는 순간 흐릿해졌다. 설명이 끝난 인물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얼굴들을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분류해 놓은 표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정한 사람이 잔인한 선택을 하기도 했고, 냉정해 보이던 사람이 뜻밖의 순간에 손을 내밀었다. 옳은 말을 하면서도 틀린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었고,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그 안에 간절함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모순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소설 속에서는 자꾸만 정리하려 들었다. 이야기를 이해시키려면 단순해져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러나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그 단순함이 이야기의 힘을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인물이 선하다고 규정되는 순간, 갈등은 예측 가능해졌다.
악하다고 정해지는 순간, 그의 미래도 거의 결정되어 버렸다.
독자는 인물을 따라가지 않고 결론만 기다리게 된다.

쓰는 사람인 내가 먼저 인물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물의 편을 들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들이 서 있는 자리를 오래 바라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한쪽에 서 있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경계에 서 있었다.
돌아갈 수도 있고, 넘어갈 수도 있고, 그 자리에서 멈출 수도 있는 지점.

나는 그 경계가 이야기를 만든다고 믿기 시작했다.


경계에 선 인물은 스스로를 설명하려 애쓴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흔들림 속에서 인물은 살아 움직인다. 나는 그 움직임을 기록하고 싶었다.

누가 옳은지 판단하는 대신, 왜 그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를 묻는 쪽을 택했다.


그 뒤로 쓰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장면을 만들 때 결론부터 떠올렸다면, 이제는 인물이 무엇을 보았는지부터 생각한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잃지 않으려 하는지. 그가 믿던 세계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그 균열이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는지 천천히 따라간다.

이야기는 예전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대신 더 오래 남는다.
인물이 결론이 아니라 과정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독자가 인물에게 마음을 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 마음이 판단에서 시작되길 바라지 않는다.
이해에서 시작되길 바란다.

이해는 동의와 다르고, 용서와도 다르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서게 된 시간을 상상해 보는 일이다.


나는 소설이 그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인물의 편을 들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그들이 서 있는 경계를 오래 바라볼 것이다.

그 선이 흐릿해질수록 이야기는 더 복잡해지겠지만,
아마도 더 진짜에 가까워질 것이다.

나는 그 불분명함 속에서
인물이 살아나는 순간을 기다리며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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