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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Dec 27. 2021

08. 일기떨기

또다시 최악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나는 20대의 나를 견뎠으니까

     


 올해 남은 날 동안 일기를 또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 직감으로 지금 쓰는 이 일기가 올해 내 마지막 일기가 될 것 같다혹 쓰게 되더라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않은 일기가 되겠지올해의 끝은 내 20대의 끝이다나는 다분히 힘들었던 내 20대를 이제 잘 정리해서 서랍에 넣으려고 한다곧 있으면 스무 살이 될 열아홉 살의 나는 내가 맞이 하게 될 20대의 내가 얼마나 서러울지도 모르고 친구들과 신나게 자정 무렵에 홍대를 갔겠지난생처음 가는 클럽 입장 줄에 서서 내 나이가 미성년자가 아닌 성년이 되는 그 기준점을 몇 분 남겨두고, 20대가 되면 여행도 많이 가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TV에서 보았던 ‘논스톱’ 같은 대학 생활을 할 거라고 떠들었을 것이다대학생이 되면 꼭 공모전에서 상을 수상한 뒤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좋은 글을 쓰겠노라고 떠들었던 그 순간의 나는영원히 건강할 것만 같았던 엄마가 21살 3월에 쓰러질 거라는 것도응급실에 실려가는 엄마의 발가락을 붙잡으며 죽지만 말아 달라고 빌게 되리라는 것도 몰랐겠지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내가 성년이 되는 새해를 맞이하며 웃었을 때대학교 복도와 화장실허름한 자취방에서 우는 날이 더 많을 대학생이 되라는 것도엄마를 간병하느라 몸에 멍이 쉬지 않게 들 거라는 것도그렇게 살아달라고 빌었던 순간을 잊고 어느 한 때는 엄마가 그때 죽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거라는 것도 모른 채 나는 내가 맞이할 멋진 20대만 꿈꾸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거라고 믿었지만 20대의 나는 만남보다 더 많은 이별을 했고누구의 잘못도 없는 다툼을 했으며 그렇게 원망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었다그리고 사랑했던 외할머니를 하늘로 떠나보낸 뒤 그 죽음을 엄마에게 아직까지 말하지 못하는 딸이 되었다내가 꿈꿔왔던 20대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한 채 밤낮없이 일하고매일 같이 병원에 가고미래나 꿈보다 버티는 것이 중요해진 20대를 보냈다내가 꿈꿨던 건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아주 멋진 20대를 만들거라 다짐했던 스무 살의 해첫날, 첫 1분의 순간이 안쓰럽게도 나는 어디서나 20대의 내가 내 삶의 가장 최악임을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그래도정말 그래도 어쩌겠는가나는 버텼는 걸


 미움을 쌓고 싶지 않아서 나를 스쳐간 인연들의 원인을 다 내게 주었지만 괜찮았다비록 그때는 실패했지만 앞으로는 사람을 대할 때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간병을 하며 힘들게 버텼다고 생각했고그게 맞았지만결과적으로 버틴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 아빠와 언니그리고 당사자인 엄마까지도 버텼다는 걸 이제 안다서로가 같은 힘으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쉼 없이 운 덕분에 나는 숨죽여 우는 것이 무엇인지사람이 바닥을 칠 때 나는 소리가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나는 그것들을 엮어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


 20대는 내게 정말 최악이었지만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삭제하고 싶은 시절은 아니다나는 그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30대가 될 것이다. 30대의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문제이 직면해 상처 받고 좌절하고 또다시 최악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나는 20대의 나를 견뎠으니까그런 의미로 20대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가련다.        



■ 일기떨기 식구들에게도 꼭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어느 시절의 내가 있나요     

■ 20대에 목표해서 이루었던 것들이루지 못했던 것들     

■ 이제 성인이 되는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2. 선란

『무너진 다리』 『어떤 물질의 사랑』『천 개의 파랑』『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나인』을 썼습니다.

  환경파괴, 동물멸종,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SF소설을 씁니다.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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