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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Jul 06. 2023

42. 일기떨기

좀 더 가뿐하게 유연하게 살 순 없는 걸까.




 최근 일터 안팎에서 일기떨기 청취자 두 분을 만났다. 팟캐스트와 관련된 만남은 아니었고 우연한 자리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한 번은 집 근처 동네 책방 ‘마을상점생활관’ 독서 모임에 참여했을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책 사장님 꽃 사장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책 사장님이 대뜸 “소진 씨, 옆에 앉은 분 일기떨기 자주 들으신대요.”라고 소개해주셨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인사도 못 한 채 어영부영 자리에 앉았다. 신유진 작가의 에세이 『창문 너머 어렴풋이』(시간의흐름, 2022)에 대해 장장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는 내내! 일기떨기 청취자님이 바로 내 오른편에 앉아 있었음에도! 나는 옆을 제대로 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내가 담당한 책의 북토크에 참여한 독자 한 분이 본인이 일기떨기 청취자라고 직접 소개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자세히 보니 작년 일기떨기 행사 때 비건 케이크를 선물해 주신 분이었다. 이번만큼은 반가운 마음을 애써 숨기지 않으려 했으나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한 달 사이 일기떨기 청취자와 한 공간에서 90분 이상 있었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매주 금요일마다 나와 언니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때 무모함은 어리석은 일이라기보단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평소 화장실이나 탕비실 혹은 카페에서도 직장 동료들과 이렇다 할 스몰토크를 먼저 시도하는 편이 아니다. 누군가 내게 새로운 헤어스타일이나 요즘 작업하는 책에 대해 묻기 시작하면 적절한 리액션과 함께 촘촘히 대답을 이어나가긴 하지만 그전에는 적막을 깨는 데 재주가 없는 편이다. 물론 저자 미팅이나 행사 전 식사 자리에서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대화를 이어나가곤 하지만 그런 하루가 저물 때쯤이면 여지없이 녹초가 되어버린다. 분명, 대학 때까지만 해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도 척척 잘 걸고 온갖 대외활동을 종횡무진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사실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는 탕비실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면 질문을 한 다섯 개 정도 떠올린다. 엇, 머리 스타일 바뀌신 것 같은데 미용실 다녀오셨어요? 그러다 아니면 어쩌지. 커피를 직접 내려드시네요. 집에서도 그러시나요? 커피 달라는 줄 알면 어떡하지. 요즘에는 어떤 책을 작업하세요? 직장에서 또 일 얘기를 한다고? 이런 식으로 혼자 질문을 최소 세 개에서 다섯 개 정도 핑퐁핑퐁 주고받으면 어느새 상대는 가벼운 눈인사만 하고 멀리 사라져 버린다. 분명 어렸을 때는 목욕탕에 가서 홀딱 벗고도 그날의 친구를 만들고, 독서실에 가서 나랑 다른 교복을 입은 애랑도 금세 떡볶이를 먹으러 갔던 것 같은데 요즘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이 다 어렵게 느껴진다. 가뿐하게 살기로 다짐한 이후로 먹고 쓰는 건 간소해지고 물건도 잘 사지 않는데 어쩐지 마음만은 더 무거워진 기분이 든다. 좀 더 가뿐하게 유연하게 살 순 없는 걸까.




화 주제

■ 요즘 새로운 사람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 성인이 되고 아니 30대가 되고 친구를 사귄 적 있으신가요?

■ 내가 좀처럼 소심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3. 소진

낮에는 책을 만들고, 밤에는 글을 씁니다.

그 사이에는 요가를 하고요.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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