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나는 풍경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고요하다.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 풍경 속에서 시간은 잠시 멈춘 듯 보이지만, 그 정적은 미세하게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이 고요한 세계의 문은 앞의 그 유명한 문장으로 열린다. 이 한 줄은 공간과 계절, 그리고 인물의 심리 상태를 통째로 바꿔놓는다.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경계, 무언가 이미 끝났으나 새로운 것이 시작되기 직전의 감각이 이 짧은 문장에 응축되어 있다. 독자는 어느새 터널 너머에서 하얗게 터지는 빛의 한복판에 선다. 터널을 벗어나는 찰나, 차창을 메우던 검은 어둠은 갑자기 시린 백색으로 바뀌고 눈 냄새를 머금은 찬 바람이 숨을 내쉬듯 밀려든다.
이 변화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순간이 있다. 아무런 징후 없이 마음속 오래된 감정들이 갑자기 다른 색으로 깨어나는 찰나다. 마치 어둠을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빛처럼, 가와바타는 독자를 감각의 정점으로 인도한다. 작가의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직선이 아니다. 흐르고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눈처럼 쌓였다 녹고, 다시 얼어붙어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순환과 닮았다. 그래서 그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사라졌다고 믿었던 감정이 예상치 못한 순간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계절이 몸속 깊은 어딘가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것과 같다.
이 소설에는 큰 사건이 없다. 대신 아주 작은 변화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방 안에 스며드는 미세한 찬기, 눈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밤의 차창에 비친 여인의 옆얼굴 같은 것들이다. 시마무라는 기차 유리창에 비친 요코의 얼굴을 보며 기묘한 환상에 빠진다.
'거울 속의 풍경은 흐릿했지만, 여인의 모습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러한 미세한 감각들이 인물들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우는 동력이 된다. 그는 유리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순간을 목격하며, 그 안에서 시간이 정지한 듯한 착각을 경험한다. 유리창에 겹쳐진 풍경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붙잡으려 애쓰는 기억의 속성과 닮았다. 선명한 듯하면서도 손을 뻗으면 사라지는 그 모호함이 삶의 실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풍경과 감정을 잃어버렸다고 믿는다. 어릴 적 느꼈던 겨울의 냄새나 누군가 지나가듯 남긴 말의 잔향, 한때 사랑했던 빛의 색깔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가와바타의 문장들은 그것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름다움은 순간에 있으며, 그 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시간은 모든 것을 지우지 않는다. 지워진 것처럼 보일 뿐, 그 순간은 여전히 마음 어딘가에서 다른 빛으로 살아 있다. 설국이라는 공간은 그 사실을 증명하는 거대한 은유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색채가 극도로 단순해지면, 오히려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은 더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그것은 녹아 흐르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든 다시 얼어붙어 형체를 갖출 수 있는 감정의 결정체들이다.
시마무라가 만난 게이샤 고마코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산골 마을에서 매일같이 일기를 쓰고 사미센을 연습하며 자신의 시간을 쌓아간다. 시마무라는 그녀의 이러한 노력을 헛수고라고 부르면서도, 그 헛수고가 만들어내는 순수한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헛수고라는 단어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정서다. 시마무라는 무용 연구가이지만 실제 무용을 본 적은 없다. 그는 오로지 서양의 문헌과 상상만으로 무용을 이해하려 한다. 그에게 삶은 일종의 헛수고이며, 설국에서 만나는 고마코의 열정 역시 아름답지만 허무한 헛수고로 비친다.
'시마무라는 그것이 헛수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청순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렸다.'
여기서 헛수고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결과에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현재의 순간에 모든 감각을 쏟아붓는 인간의 처연한 태도다. 시간이 결국 모든 것을 소멸시킬지라도, 그 소멸에 저항하며 반짝이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가 설국이 보여주는 시간의 미학이다.
고마코가 치는 사미센 소리는 눈 덮인 산골의 적막을 뚫고 시마무라의 가슴에 가 닿는다.
'그 소리는 차갑고도 날카롭게 눈의 나라를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억눌린 감정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다. 정지된 공기를 가르고 나오는 투명한 울림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대화보다 그들을 둘러싼 풍경의 변화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이는 인간의 감정이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의 일부가 되어 스며드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시마무라가 고마코의 방에서 본 창밖의 풍경, 얼어붙은 호수, 그리고 산 너머로 지는 해의 색깔은 모두 인물들의 내면을 투사하는 거울이다.
'산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하늘에는 아직 저녁노을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이런 묘사는 시간이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잠시 머물러 있음을 표현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시간을 초와 분 단위로 나누어 소비하지만, 설국에서의 시간은 감각의 농도에 따라 길어지거나 짧아진다. 시마무라가 고마코와 나누는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의 반복은, 시간의 물리적 길이보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밀도가 더 중요함을 드러낸다.
<설국>을 읽다 보면 문득 마음이 멈추는 지점이 있다. 지나간 줄 알았던 감정이 더 이상 숨지 않고 천천히 돌아오는 순간이다. 그때 우리는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풍경들이 결코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풍경들은 특정한 빛을 만나고, 어떤 바람이 불어오며, 어떤 침묵 속에 멈춰 설 때 다시 빛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은하수가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서 시마무라가 느꼈던 전율처럼, 시간은 정지된 듯하면서도 거대한 흐름이 되어 우리를 흔들어 놓는다.
'은하수가 시마무라의 몸 안으로 흘러드는 것 같았다.'
인간의 내면과 외부의 풍경이 경계가 사라지고 섞이는 이 찰나의 경험은 시간이 갖는 비가역적인 성격을 잠시 잊게 만든다. 그는 은하수를 보며 자신의 존재가 거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얼마나 덧없으며, 그 덧없음이 얼마나 눈부신 것인지를 느낀다. 이 소설에서 요코라는 인물은 고마코와 대비되는 또 다른 시간의 축이다. 그녀는 고마코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투명한 이미지를 지닌다. 기차 안에서 병든 남자를 돌보던 그녀의 목소리는 산울림처럼 맑고 슬프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맑아서 슬픈 메아리처럼 들렸다.'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보여주는 구체적인 삶의 열기와 요코가 지닌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목격한다. 그는 뜨겁게 살아 움직이는 고마코의 모습과 유리창에 비친 환영처럼 투명한 요코의 모습 사이에서 자신이 어느 쪽에 더 마음을 두고 있는지 생각한다. 두 여자가 상징하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은 시마무라에게 현재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극장에 불이 나고 요코가 떨어지는 장면은, 그동안 쌓아 올린 설국의 정적이 한순간에 파괴되는 충격을 안긴다.
'불길은 눈 위에서 붉게 타올랐고, 그것은 마치 현실의 시간이 설국을 침범하는 것 같았다.'
그 불길은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들고, 시마무라를 다시 터널 너머의 현실로 밀어낸다. 결국 그 빛은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가 만난 첫눈을 손 내밀어 받아보는 마음 같은 것. 손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는 눈송이를 보며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속성을 떠올리지만, 동시에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미묘한 떨림을 느낀다. 풍경도, 감정도, 시간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 치여 잊고 지내는 동안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을 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 가라앉은 것들을 길어 올려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든 다시 빛에 닿아 눈부시게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설국을 떠나 다시 터널을 통과해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하얀 세계에서 경험한 시간의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 한구석에 차갑고도 맑은 기억으로 남는다. 모든 것이 헛수고처럼 보일지라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온 마음을 다했던 기억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붙들 수 있는 존재의 증거다. 작가는 눈 덮인 산골 마을의 정적을 통해, 시간이란 단순히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기억 속에 층층이 쌓여가는 아름다운 퇴적물로 기록한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과 수고로움 역시, 언젠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눈앞에 펼쳐질 눈의 나라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지층이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 터널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차가운 눈의 나라일지, 혹은 뜨거운 불길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 하는 점이다. 가와바타가 그려낸 설국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시간 속에서 하얗게 타오르는 순간은 언제였느냐고. 그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 또한 아름다운 헛수고일지 모르지만, 그 수고로움 덕분에 우리의 삶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문득, 내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 30년을 매일같이 음악을 골라 공중에 실어 보내던 일도 누군가에게는 흩어지는 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기다리던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는 시간의 무늬로 남았을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마무라가 바라본 하늘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설국에서 겪은 모든 감정과 시간이 집약된 거대한 캔버스다.
'하늘은 깊고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속에서 은하수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 장면은 인간이 비록 찰나를 사는 존재일지라도, 그 찰나 속에 영원을 담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설국의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나지만, 독자의 마음속에 남은 잔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이 녹아 물이 되고 그 물이 다시 구름이 되어 눈으로 내리는 것처럼, 설국에서 경험한 시간의 조각들은 우리 삶의 다른 계절에서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우리에게 남긴, 멈춘 듯 흐르는 시간의 진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문학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터널을 통과하는 일이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일상의 번잡함은 뒤로 밀려나고, 오로지 나와 텍스트만이 마주하는 하얀 눈의 나라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시간의 파편들을 줍고, 상처 난 기억들을 가만히 쓸어내린다. <설국>이 주는 위안은 바로 거기서 온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헛수고로 끝날지라도, 그 수고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든 자신만의 은하수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제 책장을 덮고 다시 현실의 터널로 발을 내딛겠지만, 내딛는 발걸음 아래에는 이전과는 다른 묵직한 시간의 지층이 느껴질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수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