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by 세인트

음악은 사라지는 예술이다. 소리는 고막에 닿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고, 공기 속에는 오직 희미한 잔향만 남는다. 그 찰나의 사라짐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형체 없는 소리를 어떻게 글이라는 단단한 문장에 가둘 수 있을까. 나는 오랜 세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을 전하는 일을 했다. "여러분" 대신 "당신"이라 말하며 외로운 밤을 함께 하는 친구로, 또는 바쁜 일상을 달래는 이들의 삶의 배경음악으로 내가 고른 음악을 전했다.


밀폐된 라디오 부스에서 전파를 통해 음악을 전하지만 한 곡 한 곡을 틀 때마다 청취자의 반응이 보였다. 어떤 곡은 눈을 지그시 감고, 어떤 곡은 자동차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또 어떤 노래는 흠흠 콧노래로 따라 부르는 것이 느껴졌다. 음악 사이의 멘트도 중요하지만, 음악 사이의 멘트도 중요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말들이 꼭 가사나 멜로디에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곡과 곡 사이의 공백, 그리고 그 곡들을 엮어내는 방식이 나의 언어가 되기도 했다. 만약 레드 제플린의 <Rock'n Roll>이 힘차게 질주하다 절벽처럼 끝난 뒤, 따뜻한 기타 연주로 편곡된 슈베르트의 <밤과 꿈>이 고요하게 이어진다면 그것은 나의 말 없는 인사다. 이제 거친 하루를 잊고 구름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가지라는 다정한 위로인 셈이다.


음악에 대한 취향은 음악의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삼십 년 넘게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며 나의 편견이나 취향을 완전히 배제했다고 말한다면 거짓이다. 그리할 수 없다면 아예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은 음악가가 만들지만, 선곡자는 그 조각들을 조합해 청취자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기에 선곡자의 편견은 이른바 '아름다운 편견'이어야만 했다. 사라지는 음악을 붙잡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과 감동이라는 형태로 단단히 고정하는 것, 그것이 나의 소명이었다.


이제 방송 일을 떠나 더 이상 전파로 노래를 들려주지는 않지만, 그 시절 함께 듣고 싶었던 노래들처럼 새롭게 전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 네오클래식. 시간의 예술인 음악을 글로 온전히 전할 수 있을지 여전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네오클래식은 그 자체로 풍부한 공간과 이미지를 품고 있기에, 글이 가진 힘만으로도 충분히 소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더욱이 이 장르의 음악은 최근 영화음악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 우리가 기억하는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끌어올린다.


이제 네오클래식 영화음악이라는 새로운 창을 통해, 소리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공간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유튜브 등을 통해 글에 인용된 음악들을 함께 들으며 읽기를 권한다. 이 책과 함께하는 시간이 당신에게 평화롭고 행복한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수필/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