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치다

by 세인트

TV에 한 연예인, 잘 모르면서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힘들다고 하니 옆의 다른 연예인이, 그럼 잘 모르면서 널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걸로 퉁쳐! 한다. 순간 나는 그거 정답이네! 했다.

현자들의 말씀보다 장난스레 던지는 농담 같은 말이 더 명쾌한 때가 있다. '가다가 멈추면 간만큼 이익이다' '티끌 모아 파산'같은.


'퉁치다'라는 말은 어원을 따지기 전에 이미 "퉁" 할 때 비강을 울리는 공명 때문인지 어딘가 둥글둥글 두루뭉술하여 뾰족하고 까탈스러운 데가 없는 느낌이다. 아마도 통째 담는다거나, 손해나 이익을 나누어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덩어리인 통째로 여기자는 의미의 '통'이 변해서 된 게 아닐까 싶은데, 아무튼 뭔가를 퉁치는 건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빠른 해결을 보는 데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퉁치는 건 아날로그적이고 전근대적이다. 이성 대신 감정에 호소하는 비과학적 방식이다. 하지만 첨단과학과 이성의 시대에도 여전히 퉁치는 일이 드물지 않은 건, 어찌 되었거나 단번에 해결이 가능한 편리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퉁치기 편리함에만 기대면 위험한 결정을 낳을 수도 있다. 더욱 따지고 소상히 밝혀야 할 일임에도 오직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라 하여 그냥 "퉁치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예를 들면, 가해국가로부터 몇 푼의 돈을 얻어 쓰는 것으로 개인의 피해를 정부가 '퉁쳐' 없던 일로 해버린 위안부 할머니 보상 문제 같은 것.


그럼에도 퉁치자는 말의 폭넓은 적용성은 감탄할만하다. 한동네에서 애들 싸움에 코피가 터져 치료비를 물리느니 고소를 하느니 하기보다, 그쪽 아이도 때렸고 우리 아이도 때렸으니 서로 퉁치자 하며 지내온 덕에 아이들이 자라서 나라의 기둥이 된 것이 아닐까. 아니었다면 사내아이들 대부분은 폭력 전과자가 됐을 것이다.


안그래도 복잡한 세상에 매사에 따지고 계산하며 살기에는 넘치는 스트레스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 그러니 어지간한 건 대충 퉁치고 살다보면 기나긴 인생동안 이익과 손해가 결국은 반반으로 수렴될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퉁치는 건 비과학적이라 했으나 틀린 말이겠다. 결국 누구도 손해보지 않고, 누구도 더 이익을 챙기지 않는데다 갈등 해결의 속도마저 빠른 합리적인 만능키.


깐깐하게 굴면 절대 손해보지 않고 살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면 그리 살아도 된다. 그럴 자신 없으면 퉁치고 사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퉁치고 돌아온 날은 밤에 잠도 잘 온다. 퉁친자 둘 다 그 일을 빨리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퉁치기의 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