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섬세한 층위를 설계하는 감정 해부가
https://youtu.be/iHJ6mGSyeUM?si=dcjMNFIVq7YGlwmQ
니콜라스스 브리텔의 음악을 처음 듣고는, 이것도 네오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망설였다. 그의 음악에는 분명 미니멀한 구조와 반복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네오클래식의 계보에서 기대되는 ‘절제된 형식미’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느꼈다. 브리텔의 음악은 형식을 먼저 세우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통해 감정을 설명하거나 감정을 따라가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어디에서 균열되고, 어디에서 왜곡되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의 음악은 감정의 중심이 아니라, 감정이 흔들리는 지점을 향한다.
이 특징은 'Moonlight'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음악은 인물의 내면을 대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감정이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상태를 음악으로 붙잡아 둔다. 특히 브리텔이 마치 클럽 DJ처럼 사용한 ‘chopped and screwed’ 기법은 단순한 음악적 실험이 아니라, 감정의 시간감을 변형시키는 장치다. 음악이 늘어지고, 음의 높이가 낮아질 때 장면 속 인물의 시간도 함께 늘어진다. 감정이 흐르는 속도와 장면의 시간이 어긋나면서 관객은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 안에 ‘머무르게’ 된다. 이때 음악은 감정을 밀어올리는 익숙한 방식을 택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쉽게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붙잡는 역할을 한다.
브리텔의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얼마나 증폭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감정이 놓일 위치다. 그는 감정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음악으로 지정한다. 'Moonlight'에서 반복되는 선율은 감정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고정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반복은 안정이 아니라 제약이라 해야 맞을만큼, 감정은 자유롭게 확장되지 못하고 한정된 공간 안에서 계속 되돌아온다. 이 구조 덕분에 영화는 감정이 해소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음악은 인물의 고통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그 고통이 쉽게 소비되지 않도록 만든다.
이런 태도는 'If Beale Street Could Talk'에서도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브리텔의 음악은 사랑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사랑이 놓인 환경, 사랑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를 음악으로 배치한다. 현악기의 길게 유지되는 음들은 감정의 진폭을 키우지 않고 오히려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하게 막는다. 사랑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사랑은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 것이다. 음악은 이 미완의 상태를 끝까지 유지한다. 감정은 해결되지 않고, 서사 역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브리텔의 음악은 바로 이 ‘정지된 상태’를 견고하게 만든다.
브리텔의 네오클래식은 미니멀리즘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목적은 미학적 절제가 아니라 반복이 만들어내는 압박을 활용한다. 같은 패턴이 이어질수록 감정은 안정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해진다. 이 불편함은 우연이 아니다. 브리텔은 감정이 안정되는 순간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안정되면 이야기는 쉽게 정리되고, 관객은 감정을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의 음악은 이 거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브리텔의 음악은 종종 차갑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은 감정이 없는 음악이 아니라 감정을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는 음악이다. 그의 음악은 감정을 해석하는 권한을 관객에게 돌려준다. 음악은 감정의 방향을 암시하지만, 감정의 의미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그의 음악은 설명을 거부하는 음악이며, 동시에 매우 윤리적인 태도를 지닌 음악이기도 하다.
브리텔이 'Succession'에서 보여준 음악적 태도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인물의 권력과 감정을 드러내는 장식이 아니라, 그 권력이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표현한다. 반복되는 피아노 패턴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리듬은 권력의 질서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 질서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을 함께 전달한다. 음악은 화려하지 않지만, 결코 중립적이지도 않다. 감정과 권력의 관계를 일정한 거리에서 냉정하게 배치할 뿐이다.
니콜라스 브리텔의 음악이 영화 속에서 강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그가 감정을 ‘표현’ 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는 감정을 배열하고, 감정이 놓일 자리를 만든다. 음악은 감정을 고조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이 쉽게 정리되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구조물이라 할 수있다. 이 구조 속에서 감정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고, 관객은 그 움직임을 반복해서 바라보게 된다.
이 지점에서 브리텔은 앞선 작곡가들과 분명히 구분된다. 막스 리히터가 감정의 공간을 설계하고, 에이나우디가 감정의 균형을 조율하며, 요한 요한슨이 감정의 시간을 늘린다면, 브리텔은 감정이 머무는 자리를 제한한다. 그의 음악은 감정이 확장되지 못하도록 막고, 그 제한 속에서 감정의 진짜 성질이 드러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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