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슈카(Hauschka)

감정이 놓일 자리를 만드는 작곡가

by 세인트

https://youtu.be/jH1b-b4qA6k?si=6Fxbp0I9R2igCnl2

Tami Meets Richard


하우슈카(본명 폴커 베르텔만 Volker Bertelmann)의 음악은 네오클래식이라는 범주 안에 놓을 수 있지만, 앞선 작곡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는 감정을 구조화하거나, 시간을 늘리거나, 감정의 균형을 조율하는 방식보다는 먼저 소리가 만들어지는 조건을 만든다. 예를 들어 피아노라는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것보다 어떤 상태에서 울릴까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선율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영화 '라이언(Lion)'에서 하우슈카는 더스틴 오할로란(Dustin O’Halloran)과 함께 음악을 맡았는데, 여기서 음악은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거나 장면의 감동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인도가 배경이 되는 어린 시절의 장면들, 그리고 호주에서의 고요한 일상 장면들 사이에서 음악은 감정의 대비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장면이 가진 질감인 먼지, 빛, 소리의 밀도 같은 층을 하나 더 얹는다 인물이 느끼는 상실이나 그리움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그 감정이 놓여 있는 상태를 유지할 뿐이다.


이때 하우슈카가 사용하는 피아노는 건반 위에 얹힌 물체들로 인해 소리가 고르게 울리지 않고 미세하게 갈라지거나 마찰을 일으킨다. 이 불완전한 울림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감정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상태, 기억이 또렷하게 이어지지 않는 상태를 드러낸다. 그래서 라이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감정이 고조되기보다는 감정이 흩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우슈카의 음악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니콜라스 브리텔과 닮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브리텔이 감정과 장면 사이의 거리를 정교하게 설계한다면, 하우슈카는 감정이 자리 잡는 바닥의 재질을 바꾼다. 그의 음악은 감정의 방향이나 강도를 조절하는 것에 촛점을 두지 않고 감정이 놓일 수 있는 표면을 거칠게 만들거나 고르지 않게 만든다. 때문에 그 위에 놓인 감정은 안정되지 못하고 긴장을 품게 된다.


이런 방식은 영화 '어드리프트 (Adrift)-우리가 함께한 바다'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도 하우슈카는 오할로란과 함께 작업했는데, 광활한 바다와 고립된 인물의 상황 속에서 음악은 드라마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음악은 바다의 크기를 강조하거나 공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대신 파도와 바람,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환경 속에서 소리는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배치된다. 음악이 감정을 주도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인물의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그 감정이 놓인 상황을 더 또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하우슈카의 음악은 멜로디보다 접촉에 주목하게된다. 음과 음이 부딪히는 방식, 소리가 공기와 마찰하는 순간, 울림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고 남는 잔향 같은 것들. 이런 요소들은 감정을 직접 이야기하지 않지만, 감정이 발생하는 조건을 명확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설명을 덜어낼수록 더 정확해진다. 소리가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면도 쉽게 미화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하우슈카는 영화음악을 하나의 미장센으로 사용하지 않는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장면 위에 덧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장면이 놓여 있는 환경이다. 인물이 서 있는 바닥, 공기의 온도, 소리가 퍼지는 공간의 밀도 같은 것들이 음악을 통해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이때 음악은 감정을 대신 말하지 않고 감정이 놓인 상태를 유지한다.


그래서 하우슈카의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분명해지지 않고 쉽게 정리되지도 않는다. 음악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장면을 감싸는 조건을 끝까지 유지할 뿐이다. 이 방식은 감정을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감정은 관객의 몫으로 남고 음악은 그 감정이 발생한 자리만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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