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오랫동안 라디오 방송 음악프로그램의 작가, PD, 그리고 때로는 DJ로 음악을 소개하는 일을 했습니다. 유행하는 노래나 신청곡에 더해 청취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음악'을 선곡합니다. 음악이란 취향이니 저의 선곡이 불특정 한 청취자들에게 의도대로 전해졌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30년이라는 오랜 기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음악을 찾아 듣고 소개하는 일을 한 세월만이라도 인정한다면, 어느 정도는 청취자의 마음 가까이 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음악은 지식이나 이해의 대상이 아니기에 가능한 해설보다는 차 한잔 두고 이야기 나누듯 청취자와 하나의 노래로 공감을 나누려 했습니다. 비록 스튜디오에서 전파를 통해 일방통행으로 전하는 마음이지만, 청취자의 얼굴이 보이고 마음이 보였습니다. 이 곡을 드리면 어떤 표정이 되겠지, 그리고 다음 이 곡을 이으면 어떤 마음이 되겠지 하는.
이 책도 노래를 해설하려 쓰지 않았습니다. 분류하지도 않고, 정리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음악이
어떤 때 어떤 상태로 놓였는지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여기 실린 음악들은 대부분 말이 늦는 음악들입니다. 혹은 말이 앞서는 순간 그 성질을 잃어버리는 음악들입니다. 그래서 설명보다 거리감을 택했고, 분석보다 느낌을 택했습니다.
여기의 음악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나 취향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곡은 그 시간에 놓여야 했고, 저는 그것을 허락했을 뿐이지요. 글은 방송을 위해 쓴 원고처럼 당신에게 건네는 말을 글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 장만 읽어도 충분하고 중간에서 덮어도 좋습니다. 글을 읽다가 음악을 다시 듣게 될 수도 있고, 음악을 듣다가 글을 멈출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책의 목적은 이미 이뤄진 것이라 여깁니다. 음악이 놓인 자리에서, 설명은 그 바깥에 머물러야 하니까요.(수필/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