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ope I Don’t Fall in Love

by 세인트

I Hope I Don’t Fall in Love with You - Emiliana Torrini (영화 Adrift 우리가 사랑한 바다 中)


https://youtu.be/v6orzLoREXc?si=4mraXX_USUBmwFt_


"너와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바래

사랑에 빠지면 슬퍼지니까


음악은 흐르고 너는 내게 네 마음을 보여주려하지

나는 맥주를 마셨어, 네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너와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바래..."


이 노래는 처음부터 반어법으로 시작합니다. 사랑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은 이미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증거지요. 그래서 고백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차라리 스스로에게 하는 부탁이라고 할까요.


같은 가사가 반복되지요. '바란다(hope)'는 말이 계속됩니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정말 괜찮은지 확인하는 것처럼. 이 반복은 마음을 진정시키기보다는 살짝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 노래가 잘 알려진 것은, Tom Waits의 원곡이 이 망설임을 아주 선명한 인물의 목소리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술을 안 마셔도 술주정뱅이같은 그의 목소리와 더불어 원곡에는 주인공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늦은 밤 술집에 홀로 앉은 취한 남자, 혼잣말을 하고 있으며, 이미 자신의 감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요. 그는 그 사실을 조금 늦게 인정할 뿐입니다. 그래서 원곡은 술취한 남자의 독백처럼 들리네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영화 'Adrift'에서 여주인공 '태미'가 Emiliana Torrini의 목소리를 빌어 노래하는 버전에서는 ‘나’가 훨씬 흐릿합니다. 목소리는 특정한 인물을 가리키지 않고, 장소도 또렷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없어요. 대신 나중에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지요. 그 깨달음도 크게 강조되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번 반복된 말들 사이에서 뒤늦게 슬쩍 모습을 드러낼 뿐이고요. 그래서 Emiliana Torrini의 노래는 극적인 반전을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끝에 이르러서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다짐처럼 들리던 말이, 마지막에는 사실에 가까워집니다.


Tom Waits의 노래가 한 사람의 이야기로 남는다면, Emiliana Torrini의 이 노래는 듣는 사람의 상황으로 열려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백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래서 이 버전의 노래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대해 판단하지도 않고, 그저 '이런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어쿠스틱 기타 하나, 마치 아마추어의 노래처럼 기교없이 풋풋하고 소박하게 부르는Emiliana Torrini의 목소리, 이런 것이 끈적하고 부랑자같은 느낌의 Tom Waits와는 전혀 다른 노래로 만듭니다.


이 노래는 다 듣고 나도 화자의 상황이 크게 달라진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처음과 같지도 않고요. 조금 전보다 자기 마음을 더 알게된 상태, 그 정도의 변화만 보이네요. 이 책의 첫 곡으로 이 노래, 이 버전을 고른 이유도 그때문입니다. 이 책은 읽는 이가 이야기를 따라오게 하거나, 감정을 끌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글과 함께 음악을 듣고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는 책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Emiliana Torrini는 Tom Waits의 노래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래가 이미 만들어둔 길 위에서 조금 다른 속도로 걷는 음악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사랑을 부정하다가 인정하는 노래가 아니라, 사랑을 경계하다가 이미 그 안에 들어와버렸음을 알아차리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로 시작합니다. 이 책 역시 확신이 아니라, 그 늦은 깨달음의 속도로 한 장면씩 넘어가려 하기 때문이지요.(수필/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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