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단란했던 날

by 세인트

모처럼 고향친구들과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고 단란한 마음으로 근처 단란주점에 갔다. 여느 단란주점과 마찬가지로 다른 테이블의 모르는 손님들과도 서로 손뼉 치고 단란하게 노래하며 놀라고 만든 무대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단란주점과 달리 그 집은 무대 중간의 반주기와 더불어 한옆에 커다란 드럼 세트가 놓여있었다.


먼저 와서 놀고 있던 다른 손님들의 노래가 끝나고 우리 순서가 되어 첫 번째 친구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현배라는 친구가 슬그머니 무대로 오르더니 드럼 앞에 앉았다. 그제서 얼마 전 현배가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것이 생각났다.


현배는 한창 열창을 하고 있는 첫 번째 친구의 노래에 맞춰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쿵작 쿵작 처음에는 좀 하나? 싶었는데 슬슬 박자가 어긋났다. 노래하던 친구는 갑자기 등장한 엇박자에 쩔쩔매며 연신 현배를 째려보았다. 그래도 현배는 아랑곳 않고 혼신을 다해 드럼을 두드렸다.


박자 중간 중간 틈만 나면 드럼세트의 모든 드럼과 심벌즈를 차례로 훑는 후다다닥을 끼워 넣었다. 그게 고난도의 연주 기법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때문에 노래와 드럼은 더욱 엇박자가 되었다. 언젠가 어느 레스토랑의 피아노 연주자가 온음표 강박증인지, 온음표만 나오면 견디지 못하고 건반을 위에서 아래로 주루루룩 훑어서 비싼 와인이 혀의 왼쪽에서는 포도쥬스 맛이, 오른 쪽에서는 소주 맛이 나는 진로와인 만도 못하게 됐된 것이 생각났다.


아무튼 함께한 친구들이 단란하게 순서대로, 하지만 엇박자의 드럼 때문에 겨우겨우 마이크가 돌아간 뒤 기다리던 다른 테이블의 순서가 되었다. 하지만 현배는 무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다른 손님이 노래를 시작하고, 현배는 열심히 드럼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 사이 실력이 늘었을리 없으니 이번에도 노래와 박자가 따로 논다. 노래하던 손님이 몇 번 현배를 흘끔 거리다 노래를 멈췄다. "어이, 거 선생님, 드럼 안 치시면 좋겠는데요?"


나만 그랬을까?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모르는 척 "잔 비었네, 한 잔씩들 해!" 하며 분위기를 돌렸다. 노래하던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으니 못 들었을 리 없었겠으나 다들 못 들은 척 "그래 그래, 술들 해!" 하며 서로 잔을 권했다.


그날 이후 한참을 지나 그 친구들과 전의 그 동네에서 또 만나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현배가 그 단란주점에서 입가심이나 하자고 했다. 그러자 모두들 그 집에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았는지, 불친절하다는 둥 안주가 별로라는 둥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다른 곳으로 가자하고 이미 발걸음을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아무도 드럼 얘기는 하지 않았다. 현배의 씁쓸한 표정이라니... 시대가 몰라주는 천재 예술가의 표정이 그렇지 않을까.


인근의 다른 단란주점을 찾아 문을 열었다. 이른 저녁시간이어서인지 조용하고 어두운 실내 저쪽에 커다란 무대가 있고, 성탄절을 잊은 반짝이 조명만 알록달록 깜빡이고 있었다. 무대에 드럼은 없었다. 그런데 색소폰과 기타가 있었다! 다행히 친구들 중 기타를 잘 치거나 색소폰을 부는 사람이 없어 그날은 단란주점에서 나의 단란한 친구들과 매우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끝.

이전 29화유소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