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헤커 (Tim Hecker)

by 세인트

팀 헤커 (Tim Hecker)

브랜던 크로넨버그의 영화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의 시작. 화창한 휴양지의 풍경 속에서 관객은 길을 잃는다. 주인공 제임스가 해변에 서 있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눈부신 태양과 여유로운 관광객들을 비추지만, 정작 귀에 들리는 것은 휴양지의 활기가 아니다. 팀 해커가 설계한 음향은 마치 낡은 냉장고의 웅웅 거리는 소음이나, 낮은 주파수의 마찰음 같다.


그는 이 기계적인 소음을 아주 낮은 볼륨으로, 그러나 끈질기게 화면에 깔아 둔다. 관객은 시각적으로는 낙원을 보고 있지만, 본능적으로는 탈출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음을 직감한다. 음악이 장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자체가 관객의 감각을 건드려 "이곳의 공기는 오염되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불쾌한 긴장감은 밤의 수영장 장면에서 더 노골적으로 압박한다. 물결은 잔잔하고 인물들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지만, 팀 해커는 신시사이저의 음을 겹겹이 쌓아 올려 현장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관객은 마치 깊은 물속의 수압으로 고막이 먹먹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경험한다. 인물의 작은 움직임이나 물소리조차 팀 해커가 배치한 거친 노이즈 속에 파묻힌다.


여기서 발생하는 공포는 "무슨 사건이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 아니라, "지금 이 공간에 산소가 부족하다"는 육체적인 고통이다. 소리는 인물들이 리조트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혀있음을 알리는 청각적인 감옥을 만든다. 이후 벌어지는 환각과 폭력적인 의식들이 갑작스러운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이미 소리가 관객의 신경을 팽팽하게 당겨 파국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북극의 바다를 다룬 드라마 <더 노스 워터(The North Water)>에서 더욱 선명하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나가는 포경선 위에서, 팀 해커는 악보에 그려진 음악 대신 '얼음이 깨지는 비명'과 '배의 철판이 뒤틀리는 소음'을 배치한다. 안개가 자욱한 바다 위에서 배가 전진할 때, 소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전혀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진흙탕에 빠진 엔진이 헛도는 소리처럼 낮은 위치에서 웅웅 거릴 뿐이다.


팀 해커는 소리의 높낮이를 화려하게 조절하는 대신, 소리의 ‘두께’를 두껍게 만들어 안갯속에 갇혀 있는 시간의 길이를 관객이 직접 체감하게 만든다. 육지에서의 하루와는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르는 이 배 위에서의 시간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사건보다 얼어붙은 채 꼼짝 할 수 없던 절망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팀 해커의 작업은 연주라는 표현보다 소리의 실험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는 깨끗하게 녹음된 오르간이나 피아노 소리를 가져와 그것을 디지털로 수없이 왜곡하고, 노이즈를 섞어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부식시킨다. <인피니티 풀>의 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기괴한 파티에 탐닉하는 장면에서 이 ‘부식의 미학’은 절정에 달한다.


보통의 영화라면 심박수를 높이는 빠른 비트를 사용해 흥분을 유발하겠지만, 그는 오히려 소리의 해상도를 극단적으로 낮추어 모든 소리를 진흙처럼 뭉개버린다.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나는 지지직거리는 소음이나, 낡은 테이프가 늘어지며 소리가 뒤틀리는 듯한 불쾌한 음향이 화면을 덮는다. 화려한 조명과 춤추는 몸들이 화면을 채워도, 귀에 들리는 소리는 낡고 부식된 기계가 내뱉는 신음이다. 이 시각과 청각의 의도적인 불일치 때문에 관객은 인물들의 쾌락에 동조하지 못하고, 현실의 감각을 잃는듯한 환각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그가 다른 네오클래식 작곡가들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지점이다. 요한 요한슨이 차가운 정적의 구조물을 세우고 막스 리히터가 서정적인 선율의 반복을 통해 정서를 자극할 때, 팀 해커는 소리를 긁고 찢고 이어 붙여 관객 앞에 거대한 '노이즈의 벽'을 세운다. 그는 관객의 감정을 부드럽게 설득하기 전에 관객의 신경에 거친 신호를 먼저 보낸다. 그래서 그의 음악이 사용된 영화를 본 뒤에는 특정한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것이 아니라, "그 안갯속에서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 "그 수영장에서 얼마나 고막이 압박받았는지" 같은 지극히 신체적인 압력이 먼저 되살아난다.


사건이 시작되는 순간보다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체류’가 더 길게 유지되는 것, 그것이 팀 해커가 소리를 다루는 목적이다. 인물의 선택이나 갈등이 화면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전에 이미 장면 전체에는 눅눅하고 무거운 소리의 막이 덮여있다. 이런 방식은 이야기를 앞으로 진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리에 관객을 묶어둔다. 관객은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까"를 궁금해하기보다, "지금 이 상태를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 팀 해커는 이야기의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감각 기관 자체를 고장 내는 사람이다.


결국 팀 해커의 음악이 지나간 자리에는 명료한 감정의 찌꺼기나 아름다운 여운이 남지 않는다. 대신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든 깊고 축축한 시간의 수렁이 남는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남는 것은 이야기의 감동이 아니라, 끈질기게 귀를 괴롭히던 소음이 멈춘 뒤에 찾아오는 이명(耳鳴) 같은 것이다. 그 이명이야말로 팀 해커가 관객의 감각에 새겨놓은 흔적이다. 그는 선율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거친 진동을 통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보여준다. 멜로디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이 묘한 신경의 떨림, 그것이 팀 해커가 영화라는 시각 매체에 선명하게 남기는 결코 감성적이지 않은 차가운 지문이다.(수필/음악)




이전 12화벤 프로스트 (Ben Fr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