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ged Victory for the Sullen
영화 <엘리노어 릭비: 그 남자 그 여자(The Disappearance of Eleanor Rigby)>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그(Him)'와 '그녀(Her)'의 시선으로 나누어 서술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서로 다른 기억을 쌓아가는 두 남녀. 이 파편화된 감정의 틈새를 메우는 것은 더스틴 오할로란(Dustin O'Halloran)과 아담 윌츠(Adam Wiltzie)로 구성된 유닛, A Winged Victory for the Sullen(이하 AWVFTS)의 음악이다. 이들의 음악은 서사를 보조하는 배경음의 역할에 머무는 것을 넘어 인물들이 갇혀 있는 '슬픔의 공간' 그 자체가 되어 관객에게 와닿는다.
전통적인 영화음악이 인물의 슬픔을 대변하기 위해 애절한 멜로디를 쌓아 올리거나 고조되는 현악으로 감정의 파고를 만드는데 비해, AWVFTS는 오히려 선율을 지워나가는 '뺄셈의 미학'을 택한다. 코너와 릭비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장면에서, 접시는 비어 있고, 포크를 든 손목은 납을 든듯 무겁다. 카메라는 이들의 침묵을 성급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데드 타임(Dead Time)'을 그대로 노출한다.
이때 흐르는 이들의 음악은 '지속음(Drone)'과 느리게 변주되는 '잔향(Reverb)'이다. '막스 리히터(Max Richter)'가 서정적인 반복 선율로 관객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자극하거나, '요한 요한슨(Jóhann Jóhannsson)'이 거친 질감의 미니멀리즘으로 차가운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에 비해, AWVFTS는 음과 음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뭉갠다.
식탁 위의 침묵 속에서 흐르는 아주 느린 현의 울림은 공간의 '무게'를 만들어내며, 이 소리는 두 주인공의 관계와 닮았다. 완전히 남이 된 것도, 그렇다고 다시 하나가 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음악은 이 '사이의 시간'을 붙잡아두기 위해 공격적인 크레셴도 대신,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아주 서서히 배음을 쌓아 올린다. 관객은 음악을 능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갇혀 있는정체된 무게를 '느끼게' 된다. 음악이 멈추는 것보다 오히려 음악이 그 자리에 머물면서 침묵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순간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밤이 깊어진 뒤, 릭비가 창가에 홀로 앉아 밖을 내다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정적인 순간 중 하나다. 거리의 불빛은 희미하게 흔들리고, 방 안에서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전화도 울리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없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이 정적을 깨기 위해 서정적인 피아노를 넣겠지만, AWVFTS는 아주 낮은 주파수의 신디사이저 음과 멀리서 들리는 듯한 첼로의 긴 호흡을 겹쳐놓는다. 이들은 '사건 전의 전조'가 아닌 '사건 이후의 여백'을 다룬다. 음악은 장면을 이끌거나 감정을 결론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멈춰 있는 시간을 그대로 붙잡아둘 뿐이다.
여기서 관객은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한 것보다 지금 이 고독한 시간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까에 마음을 뺏긴다. 음악이 소리가 아니라 침묵의 일부가 되어버릴 때, 관객은 인물의 고립감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 대신, "이 고요함이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을까?" 묻게 만드는 힘, 그것이 AWVFTS가 다른 네오클래식 작곡가들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지점이다.
두 사람이 같은 버스에 앉아 있지만 시선이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 장면에서도 이들의 음악적 어법은 같다. 차창 밖 풍경은 빠르게 뒤로 밀려나는데 음악은 그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문다. 여기서 WVFTS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들은 클래식 악기 편성을 사용하면서도 구조적으로는 앰비언트(Ambient) 음악의 정수를 보여준다. 음의 고저 변화를 최소화하여 시간의 흐름을 무디게 만든다. 요한 요한슨의 음악이 종종 차갑고 금속적인 소외감을 준다면, AWVFTS의 음악은 좀 더 온기가 남아 있는, 그러나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질감을 만들어낸다.
그 안개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은 마주치지 않아도, 그들이 공유하는 슬픔의 농도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음악은 두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려는 섣부른 시도를 하지 않는다. 오직 그들이 같은 고립감을 안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이동하는 버스라는 공간 속에서 소리는 정지해 있고, 그 부조화 속에서 관객은 인물이 느끼는 상실의 무게를 소리의 압력으로 체험하게 된다.
AWVFTS의 음악은 '누군가와 같은 장소 안에 있었던 공간의 감각'을 기억하게 만든다. 사랑의 절정도 아니고 이별의 눈물도 아닌, 아직 끝나지 않은 채 가만히 이어지고 있던 그 짧은 시간의 분위기다. 이들의 역할은 화면을 바꾸거나 사건의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 두는 것이다. <엘리노어 릭비>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특별한 극적 장치는 없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고 화면은 조용히 암전된다. 그 위로 남아 있는 소리 역시 크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무언가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한 긴 여운이 남는 것은 바로 이 '잔존'의 힘이다. 그 여운은 슬픔도, 희망도 아니고, 그저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지났다는 공유의 기억일 뿐이다. 멜로디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이 묘한 마음의 진동, 그것이 바로 공간을 작곡하는 AWVFTS가 영화음악 장르에 남기는 가장 선명한 흔적이다.
이들의 음악은 묻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상실했을 때 남는 것은 그와 나누었던 대화였는가, 아니면 함께 침묵을 견뎌내던 그 공간의 느낌이었는가. AWVFTS는 후자를 선택함으로써, 네오클래식 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정적인 공감의 시간을 만들어낸다.(수필/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