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프리델(Brad Fiedel)
1984년,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관객들은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기괴한 소음의 파동과 마주했다. 오프닝 시퀀스, 폐허가 된 2029년의 로스앤젤레스 위로 거대한 기계의 발이 인간의 해골을 짓밟는 장면으로 브래드 프리델의 음악은 시작된다. 여기서 들리는 소리는 유려한 선율이 아니었다. 둔탁하게 고막을 때리는 금속의 타격음과 신경질적으로 떨리는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의 발진음.
프리델은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가진 따뜻한 정서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을 묘사하기 위해 악기 본연의 소리를 왜곡하고, 차가운 전기 신호로 치환된 금속성 사운드를 설계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철저히 물리적이었고, 당시 가용한 기술적 한계를 거꾸로 이용했다. 텅텅 울리던 그 유명한 '5박자 테마'를 만들기 위해 프리델은 정교한 시퀀서 대신 주방에서 쓰는 무거운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선택했다. 그는 마이크를 바짝 대고 프라이팬 바닥을 내리쳤으며, 그 울림을 샘플러에 담아 기계의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을 창조했다. 이 소리는 영화 전체를 통해 T-800이라는 살인 병기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물리적 선언이 됐다.
특히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가 밤의 공터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순간에도, 배경에는 아주 낮은 주파수의 웅성거림이 흐른다. 프리델은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선율을 넣는 대신, 추격자가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다는 공포를 소리의 압력으로 표현한 것이다. 카일이 미래의 전쟁터를 회상할 때 흐르는 음악은 음악이라 부르기보다 전기의 합선으로 인한 스파크 소리와 같다. 이로 인해 관객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계가 다가오는 공포를 체감하게 된다.
후속작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서 프리델의 음악적 언어는 더욱 정교한 질감을 표현한다. 액체 금속 로봇 T-1000이 등장하는 장면들. 그가 정신병원 복도의 창살을 통과하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경찰차를 몰 때, 프리델은 '금속의 신음'을 사운드트랙에 전면 배치한다. 고음역대의 신시사이저 음을 극단적으로 길게 늘어뜨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철사가 끊어지기 직전의 날카로운 파동을 만들어낸다. 이 소리는 시각적으로 매끄러운 T-1000의 외형과 결합하여, 인간의 생물학적 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이질적인 물질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특히 영화 중반부, 사라 코너가 핵폭발의 환영을 보며 철조망을 붙잡고 절규하는 장면은 프리델의 연출력이 정점에 달하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비극적인 현악 합주가 흐르겠지만, 프리델은 여기서 기계적인 노이즈를 겹겹이 쌓아 올린다. 눈앞의 풍경이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릴 때, 음악 또한 형체를 잃고 거대한 음의 덩어리로 변한다. 이는 슬픔의 표현이라기보다 파괴의 에너지를 청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관객은 사라의 절규 뒤편에서 들려오는 그 기괴한 불협화음을 통해 인류 멸망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실시간으로 전달받는다.
후반부 제철소에서의 결투 장면은 소리와 영상의 완벽한 결합이다. 거대한 기계 설비들이 뿜어내는 증기와 불꽃, 그리고 쇠붙이들이 부딪히는 소음은 프리델의 음악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는 현장의 소음과 자신의 사운드트랙을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처럼 엮어냈다. T-800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용광로 위에서 적과 사투를 벌일 때, 타악기 소리는 기계의 오작동을 암시하듯 불규칙하게 튀어 오른다. 프리델은 소리의 고저를 조절하는 방식이 아니라 음의 질감을 거칠게 만들어 금속과 금속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물리적 마찰열을 관객의 귓가에 그대로 전달했다.
또한 프리델은 'Prophet-10'과 같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활용하여 소리의 깊이를 조절했다. 사이버다인 시스템즈 본사 건물에 침투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낮은 베이스 음은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면서도 미세하게 피치를 흔들어 놓는다. 이는 사라와 존 코너 일행이 겪는 불안 심리를 묘사하는 동시에, 건물의 콘크리트 벽면이 주는 중압감을 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장면을 이끄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장면에 나타난 사물들의 밀도와 무게의 질량을 느끼게 만든다.
프리델의 진가가 표현된 장면은 T-800이 그 유명한, ' I'll be back'이라 하며 용광로 속으로 가라앉던 최후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사라지는 로봇의 손을 비출 때, 메인 테마의 변주가 아주 느린 호흡으로 흐른다. 이전까지 살육의 리듬이었던 '5박자 타격음'은 여기서 아주 낮은 첼로의 음색과 겹쳐지며 기계적인 슬픔을 자아낸다. 이는 인격적인 눈물을 자극하는 신파가 아니라, 한 시대의 거대한 기술적 유산이 소멸하며 내뱉는 마지막 배기음처럼 들린다. 프리델은 끝까지 감상적인 멜로디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소리의 밀도만 변화시켜 장엄한 마침표를 찍는다.
브래드 프리델은 영화음악가이기 이전에 사운드 디자이너였고, 전기 신호의 파동을 다루는 공학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80년대와 90년대 초반, 디지털 장비가 가진 차갑고 건조한 성질을 거꾸로 이용하여 '테크노-호러'라는 독자적인 장르를 개척했다. 그의 음악은 스크린 속 사건을 보조 장치가 아니라 영화 속 세계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골조이며, 관객의 심박수를 강제로 제어하는 강력한 전기 장치의 역할을 맡았다.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압도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차가운 강철의 고동을 음악으로 표현한 브래드 프리델의 설계 덕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다시 울려 퍼지는 메인 테마는 우리에게 서늘한 경고를 남긴다. 그 소리는 위로나 희망이 아니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금속의 마찰음으로 남는다.. 브래드 프리델은 소리가 어떻게 물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음악이 어떻게 기계의 생존 본능을 증명할 수 있는지를 이 연작을 통해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멜로디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차가운 금속의 잔향이며, 그것이 바로 브래드 프리델이 현대 영화음악사에 새겨 넣은 가장 단단한 흔적이다.(수필/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