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다

by 세인트

(몇 해전 썼던 글 정리해 올립니다)

장맛비가 잠시 멈춘 사이, 쏟아지는 뙤약볕에 창 너머 흙길이 눈부시다. 작은 창 밖을 내다보는데도 잔뜩 눈살을 찌푸려야만 한다. 서울살이에 지쳐 고향에 내려와 도심도 아니고 전원도 아닌 어중간한 변두리에 낡은 집을 사서 카페를 만들었다.


지역 소도시 치고는 제법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 옆이지만 길 건너에는 밭이 있고 그 경계에는 제멋대로 자란 풀들이 우거져 한쪽은 마치 시골 같다. 아파트도 오래된 데다 근처에 산책하기 좋은 호수와 재래시장, 구도심이 있어 분양 때부터 살아온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아 카페도 주민인 중년 손님들이 많은 편이다.


이처럼 마을 한쪽에 숨은 듯 자리한 데다, 간판도 손바닥만 한 카페를 어찌 알고 젊은이들도 하나 둘 찾아온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 때문이리라. 이들은 들어오자마자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음료가 나오면 맛도 보기 전에 "예쁘다, 예쁘다" 하며 사진을 찍고, 고풍스런 격자 창살이 있는 창가에 앉아 '볼 빵빵 45도 비스듬히' 얼짱 샷도 빼놓지 않는다. 특히 출입구 앞 테라스의 낡은 벤치가 가장 인기다. 일행이 나란히 앉아 인증샷을 찍기 좋아 그런 것 같은데, 그럴 때면 의례, "사장님 저희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오!", 하고 부른다. 휴대폰 화면 속 활짝 웃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눈이 부시다.


분명 내가 지나온 나이인데 마치 내겐 없었던 때인 것 같다. 좋았던 일 보다 나빴던 일을 더 오래 기억한다기에 그런 것일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절이 내게도 있었을 텐데 기껏 애써봐야 무성영화 필름처럼 희미할 뿐 소리도, 냄새도, 촉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수증 여기 있어요", 해도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해도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해도 "감사합니다". 그들은 "감사합니다"가 입에 걸려있다. 정말 감사해야 하는 나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이 입에 익지 않아 잘 나오지 않는데. 또 열에 아홉은 비운 음료 컵을 카운터까지 가져다준다. 셀프서비스에 익숙한 세대이어서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젊은이들이 앞선 세대들보다 더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하는 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예쁘기만 하다. 부러워서일 것이다, 젊음이.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그들에게는 있는 것 같다. 나도 살아봤기에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것. 내 세대들은 결코 알지 못하고 지나온 그 무엇. 나이 든 자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야 겨우 볼 수 있는, 어떤 눈이 부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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