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보다 예쁜

by 세인트

'조선미녀' 김지미 씨가 돌아가셨단다. 세상에 예쁜 배우는 넘치지만 김지미라는 이름처럼 미인의 대명사로 쓰이는 배우는 없다. "김지미 같다"는 곧 "예쁘다"는 칭송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김지미 보다 감히 '더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둘째 누나다.


고작 시골 여고생이었는데 전국에서 찾아왔다. 당시는 국군의 날이면 3군 사관학교 학생들이 지역을 돌면서 행진을 했는데, 여고생들이 동원돼 화환을 걸어주는 게 관례였다. 당연히 누나도 뽑혀나가 생도 대장에게 화환을 걸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육해공 사관생도 대장들이 약속이나 한 듯 번갈아가며 우리 집에 찾아왔다가 모두 아버지의 몽둥이에 쫓겨났다.


누나는 삼촌에게 배운 아코디언으로 조회시간마다 교단에 올라 애국가와 교가를 반주 했다. 이때를 기다려 남고 학생들이 누나 얼굴 한 번 보려고 미루나무의 매미들처럼 담벼락에 매달렸다. 지각해서 교련선생에게 '빳따'를 맞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우리 누나의 예쁜 얼굴을 보려면 그보다 더한 것도 참아내야 하지 않겠나.


여고를 졸업한 뒤 누나는 간호대 학생이 되었고 미스코리아 여대생 버전이라 할 전국 여대생 미인대회에서 '블루문'이라는 2등을 했다. 들리는 얘기로는 누나가 '썬퀸'인 1등이었는데 신입생이 선배를 누르면 위계질서에 문제가 있어 그리했다니 역시 권위주의시대 답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여대생 미인대회라니! 그때의 사람들은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희한한 생각들을 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지성인'인 대학생이라 미안했던지 비키니는 안 입혀 다행이다. 대신 한복을 입혔다. 여대생에게 한복. 게다가 그 유명한 육영수 올림머리. 컬트다. 아무튼 그런 시절이었다.


졸업 후에는 간호사가 되어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 근무했는데, 병원장이 며느리감으로 점찍어 아들과 함께 검은 세단을 타고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 아버지는 집안이 너무 차이가 난다고 한숨 쉬며 거절했다.


또 있다. 한혜숙이라는 당대의 미인 탤런트가 데뷔한 '꿈나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엄청난 시청률로 화제가 됐던 그 연속극의 주연은 사실 우리 누나에게 먼저 제안이 온 것이었다. 하지만 딴따라 절대 못 시킨다는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됐다. 아버지는 왜 딸의 일은 모두 반대를 하셨는지, 내가 딸 가진 아빠가 되어보니 알 것도 같다. 예쁜 딸을 원하는 놈은 모두 '도둑놈'이기 때문일 거다.


대체 서울의 KBS에서 지역의 조그만 도시에 사는 우리 누나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신기했다. 저작권 초상권 그런 게 없던 때라 누나의 사진은 동네 사진관 간판에도 걸렸다. 누나가 창피해 죽겠다며 떼라고 하자 사진관 주인이 우리 식구 공짜 사진 찍어주는 걸로 때웠다. 그 일에 대해서는 아버지도 아무 말 않으셨다.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하시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어떻게 KBS 방송에 나오는 것보다 동네 사진관에 걸리는 게 낫다고 보신건지 알 수 없다. 사진관 주인은 도둑놈처럼 보이지 않았나 보다.


누나도 이제 70대 중반이다. 그런데 여전히 예쁜 할매다. 매형은 서울대 공대를 나와 머리는 좋은데 키는 160에 총각 때부터 머리가 훌렁 벗어진 안경잽이였다. 언젠가 왜 매형과 결혼했느냐 물으니, 우리 집이 가난해서 그런 거 안 따지는 점잖은 집 아들이라 그랬단다. 하지만 그 나이에도 어디 아픈데 없고, 애들 반듯하게 잘 컸고, 아직도 얼굴에 잡티 하나 없는 예쁜 할머니라 수영장에서도 할아버지들에게 인기가 많다니 그만하면 복 받은 인생이구나 싶다. 누나 자신도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별다른 굴곡 없이 평범하게 산 것만으로 복 받은 것 같다"고한다.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김지미보다도 더 예쁜'이라는 수식어를, 자신의 삶에서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았던 둘째 누나는 그 대신 평범한 삶을 얻었다. 배우 김지미 씨가 노환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나는 배우 김지미 씨와 '김지미 보다 더 예쁘'다는 평범한 여자 ㅇㅇㅇ, 우리 둘째 누나의 삶을 함께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가보지않은 길을 아쉬워한다는데 누나는 예외인 것 같다.


"얘,얘, 매일 살림 하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그런 걸 왜 하니? 니 매형 퇴직하고 요샌 문화센터같은데 나가서 어울려 밥먹고 들어오니까 너어어무 좋다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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