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제 몸에 맞지 않는 너무 큰 바지를 입었기에 "옷이 그게 뭐냐? " 하니 '오버핏'이란다. "아하, 똥 싼 바지?" 그거 예전에도 있었어.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전에는 '똥 싼 바지, '아빠 코트' 뭐 이렇게 불렀는데" 했더니 눈을 흘기며 "아빤? 요즘 유행이야" 한다. "그래, 똥 싼 바지! 그걸 오버핏이라 부르든 말든".
힙합이 한창 유행하던 무렵, 똥 싼 바지가 유행을 했다. 허리가 커서 흘러내린 건지, 일부러 내려 입은 건지 엉덩이 반쯤 내려와 빤쓰가 다 보여야 '스웩'이 난다는 그 바지. 바지통이 헐렁해 바람이 잘 통해서 남자애들 사타구니 가려울 일이 없을 것 같은데도 습관적으로 그곳을 한 번씩 주물럭대는 패션. 이것이 똥 싼 바지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세계적인 음원 사이트 '스포티파이'에 따르면, 남자는 20대를 넘으면 새롭게 좋아하는 노래가 없단다. 즉 20대 전에 듣던 노래가 최고인 줄 안다는 얘기다. 반평생을 방송에서 음악을 팔아먹고 산 나도 그런 것 같다. 일례로, 록에 관한 한 여전히 레드제플린, 도어즈가 최고다. 이후에 너바나가 좀 한다 하는 것 같았으나 그래봤자 레드제플린에겐 '새 발의 피'라는 이 확고한 편견.
어차피 음악이나 패션 같은 건 취향의 문제이니 우열을 가릴 게 못되지만, "그래도 '라때'가 젤 좋았어" 하는 편견이나 고집마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 "그게 옷이냐? 그게 록이냐? 블루스가 빠지면 록이 아녀" 이런 자기만의 취향을 마치 진리인양 뻐기는 맛에 젊은이들 앞에 열변을 토한다.
이건 "싸가지 없는 놈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는데!" 하며 '막걸리 향 날리는 7호선'을 만드는 도봉산 등산객 할배의 외침과 비슷하다. '이 나라'에서 '록 음악'으로 소재만 바뀐 것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전문가인양, '세계 3대 기타리스트'나 '딥퍼플 보컬의 계보' 같은, 요샌 검색만 하면 다 나오는 얘기를 가지고 젊은 록 팬들 앞에서 젠체한다. 하긴 요즘은 록 듣는 젊은이도 없다만.
패션이라고 다를까. 배꼽티가 유행하던 시절 전철에 앉았는데 마침 앞에 선 여자 아이가 그 옷을 입었다. 딴에는 열린 꼰대가 되려고 속으로 "인정, 인정" 하며 도를 닦는데, 하필 그 아이의 '똥배'가 유난하여 숨을 쉴 때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뱃살을 코 앞에서 보고 있으려니 견디기 쉽지 않았다. 하여 지그시 눈을 감았다.
"참자".
요즘 '영포티'라며 젊은 척하는 중년을 비웃는 신조어가 생겼다. 어느 시대나 젊은이는 나이 많은 이를 놀릴 단어를 창조한다. 꼰대, 틀딱, 노땅, 영감탱이... 까쓰통 할배나 태극기 부대는 살짝 결이 다른 이름이지만, 모두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다.
'도봉산 막걸리 할배'의 울분을 젊은이들이 알아줄 이유가 없다. 몰라준다고 서러워할 필요도 없다. 저만치 그들의 순서가 기다리고 있으니 공평하다. 그러니 남은 세월 성질 부리지 말고, 애들 옷 입는 거 잔소리하지 말고, 딴에는 신나라 입고 나가는 데에다 대고, "똥 싼 바지"니 뭐니 소금 뿌리지 말자. 뭐 어렵나? "헐렁하니 바람이 들어가 좀 춥겠네" 정도만 하자. 아니, 그 말도 하지 말자. 그냥 입 닫고 조용히 지갑만 열자. "어울리는 티도 하나 사 입으면 좋겠다" 하고. 그런데, 할배들은 돈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