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한복판을 지나

언젠가는 어딘가에 닿기를

by 희붐

때는 여름이고,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래프팅이었다. TV에서 연신 래프팅을 새로운 스포츠로 소개할 즘이었다. 고무보트를 타고 강물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은 신나 보였고, 사방에 물을 튀기며 몸을 던지는 모습에선 발끝의 짜릿함마저 느껴졌다. 구명조끼 안에 어떤 옷을 입을지 한 달 전부터 고민하다, 결국 반 전체가 여름 체육복을 준비하기로 약속했다. 한마디로 우린 꽤 들떠 있었다.


그날이 왔다. 하늘은 연신 맑았고, 햇빛에 데워진 자갈은 숯불처럼 뜨거웠다. 빨간 모자의 조교까지 모두 9명이 보트에 올랐다. 강은 검은빛이 돌았다. 아마 깊고 무한하다는 뜻일 것이다. 얕은 물에서 첨벙거렸던 지난날의 물놀이와는 다른 세계였다. 마치 팽팽한 고래 등에 올라탄 듯했다.


물 밖에선 보트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해 낑낑댔는데, 노를 젓을 수 있게 되자 봄날의 제비처럼 쏜살같았다. 손바닥만 한 노 하나로 물길을 만드는 게 신기했다. 노를 가로로 눕히면 그 위를 타고 강물이 흘렀고, 세로로 세우면 투명한 강물이 노를 타고 유연하게 넘어갔다. 물이 다양한 모양으로 만져지는 듯했다.


쿵. 순간 머리 전체가 크게 울렸다. 눈이 질끈 감겼다. 게으름 피우지 말라는 으름장이 날아왔다. 조교가 노를 들어 나의 노란 헬멧을 때린 것이다. 분했다. 하긴 이 보트 위에서 강물의 모양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을 테다. 그에겐 안전하게 완주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그랬는지 모른다. 나만 비켜서 있었는지도.

스무 살의 여름은 경남의 시골마을에서 맞았다. 열흘간 동아리 사람들과 농활을 간 터였다.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이 마을의 빈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공부를 했다. 수확이 끝난 뒤 말라죽은 딸기 줄기를 걷어내고, 공동 창고의 묵은 짐을 정리하는 일 따위를 했다.


가장 고된 일은 맨발로 논에 들어가 피를 뽑는 거였다. 피는 벼와 비슷한데, 나락이 적게 달리는 주제에 땅을 차지해버리니, 뿌리 내리기 전에 뽑아내야 한다고 했다. 8월의 직사광선은 사정없이 내리쬐고, 그늘 한 점 없어 사방이 고역이었다.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피를 골라내고 있노라면, 온갖 시름이 달려드는 듯했다. 그러다 ‘이놈의 피, 끈질기게도 많다’며 욕지거리를 한바탕 내뱉어야 속이라도 시원해졌다.


어스름이 내리고 모두 벌게진 얼굴로 밥을 두 그릇씩 비웠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선배들은 어김없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 중 제일 학번이 높은 선배가 입을 뗐다. 농활은 단순히 봉사활동이 아닌, 농민과 학생이 서로 힘을 합치는 활동이라며, 하루 동안 느낀 점을 말해보라 했다.


나는 농사일이 참 힘든데,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피를 뽑으며 욕을 내뱉고 있더라고, 피도 자신의 생리대로 나고 지는 건데, 인간이 나락을 얻겠다는 이기심으로 그리 생명을 대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선배들의 얼굴엔 일제히 물음표가 떴다. 연대 활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일깨워주려는 그들 앞에서 풀 포기의 생리 따위를 운운했으니, 핀트가 한참은 빗겨가고도 남았다.


이번엔 봄이다. 은근한 기운이 저 깊은 땅속에서부터 올라오는지 놀이터의 모래사장 위로 웬 풀이 불쑥 솟았다. 한낮의 동네에서 분주한 건 쑥 캐는 할머니와 그 작은 등을 지키는 누런 개 한 마리뿐이다. 그 광경을 이 시간에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내가 본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부산의 한복판으로 출근하다, 이제는 외딴 동네에서 하루 만 보씩 걷는 것만 챙기며 산다. 돌아보면 한참은 중심에서 떨어져 있었다. 앞을 향해 부지런히 노를 젓다가도 사사로운 물결의 모양에 매료되는 사람이었고, 농민회의 커다란 깃발 대신 뿌리째 뽑힌 풀포기를 마음속에 품고 오는 사람이었다.


오늘의 나는 얼마나 더 외딴곳으로 가고자 여기 있는 걸까? 시간의 화살이 인생의 한 가운데를 지나 어느 과녁에 꽂힐지, 그 위에 나는 어떤 표정으로 서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 다만 그곳이 무수한 물방울과 이름 모를 풀들까지 모두 둘러앉는 커다란 세계이기를 꿈꿔본다. 언젠가는 어딘가에 닿기를.



[국제신문-감성터치](19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