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각오보다 오래가는 힘을 찾아
점심으로 매운 떡볶이를 먹었다. 저녁은 두툼한 철판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이다. 5대 영양소를 따지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그동안 7첩 반상은 먹지 못하더라도 식탁 앞에 앉을 때면 탄수화물, 단백질, 무기질 따위의 비율을 눈대중으로 계산하곤 했다. 매번 6,000원 선에서 끼니를 해결하니, 탄수화물이 지나치게 많거나 식이섬유와 비타민 따위는 부족한 식단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점심에 칼국수를 먹느라 단백질이 부족했던 것 같으면, 저녁은 순두부백반을 고르는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는 유독 일이 안 풀렸다. 원인은 모호한데, 결과는 모두 혹독한 것들이었다.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건 어제 겪은 고난이 앞으로 수없이 다가올 불행의 예고편이라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어김없이 시작된 새해가 무시무시할 따름이다. 비 온 다음에 땅이 굳는다는 말은 이제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웬만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세월의 경고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부침이 많은 한 해를 겪고나니, 한 끼 먹는 거라도 당장 행복해지는 음식을 먹으리라 마음먹었다. 내일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식탁에서만큼은 단순하게 위로받고 싶은 거였다. 호떡을 예로 들어보자. 탄수화물, 지방, 그리고 상당량의 당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고소하고 달콤하고 입천장이 깜짝 놀랄 정도로 뜨끈해서 최고의 겨울 음식으로 칠 수 있다. 그러니깐 호떡이 당기는 날이면 후후 불어가며 맹렬하게 먹고, 1시간의 점심시간이라도 기쁘게 보내는 거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였다. 어찌나 책 제목이 떡볶이처럼 입에 척척 달라붙는지, 책을 펴지 않아도 이미 다 읽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 다음으로 눈에 익은 책이 '이런 나라도 행복하고 싶어'라는 에세이인데, 이 두 권의 제목을 연달아 발음하면 '이런 나라도 행복하고 싶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처절한 자기고백이 완성된다.
떡볶이 타령이 베스트셀러가 되다니, 나처럼 힘든 사람들이 아주 많았나 보다. 그래서 서점에서 맹렬하게 매운 맛을 찾고, 분식집에서 빠른 행복을 찾아 나선 것이 틀림없다. 왜 세상의 음식은 갈수록 매워지는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국의 당면 사리까지 섭렵하며 씹는 맛에 골몰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맵고, 쫄깃한 음식은 강력한 스트레스 해소제로 우리 식탁에 수없이 호명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떡볶이만 줄기차게 먹은 게 아니라 책도 열심히 읽었다는 거다. 2018년의 끝을 며칠 앞두고 <경애의 마음>이라는 두툼한 소설을 펼쳤다. 거기에는 파업에 실패한 사람, 친구의 죽음에 상처받은 사람, 엄마를 일찍 여의었지만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살이 찌고, 마음을 닫아버리고, 세상의 무관심과 동료의 멸시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나간다. 딱 죽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 안의 선한 동력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그 마음 때문에 다치고 오랜 시간 동안 힘들었더라도, 먼 길을 돌아 끝내 자신에게 당당한 삶을 선택한다. 결정적인 순간을 앞두고, 20세기 세계인의 우상이었던 마이클 조던은 마치 신기루처럼 서울 명동거리에 나타나 주인공에게 사인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최선을 다해요! 이미 최선을 다했지만."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얼마나 깊은 고난에 빠져있는지, 이역만리의 조던이 알 리는 없었을 테지만 "유 디드 유어 베스트"라는 격려는 주인공이 스스로 삶을 바꾸는 힘이 된다. 새해가 밝아도 세상은 아주 느리게 흐를 것이고, 거친 세상에서 자신을 잃지 않은 건 쉽지 않을 테지만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격려는 충분히 위로가 되고도 남는다.
얼마 전까진 '각오'라는 비장한 단어를 품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마음'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이 좋겠다. 용기를 북돋는 마음, 고생했다고 다독이는 마음은 혼자 하는 각오보다 오래가는 힘이 될 것 같다. 당장은 몸에 이로울 리가 없는 음식이라도 빈 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다면 괜찮다. 배가 부르면 저절로 느긋해지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니깐. 그러니깐 우리에겐 떡볶이 한 접시로도 충분하다. 이미 최선을 다했기에.
[국제신문-감성터치](19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