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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Aug 25. 2023

BEST 고집, 앞서가는 극장

80~90년대 서울 사대문 안 개봉관에 대한 추억 2

‘BEST 고집, 앞서가는 극장’, ‘당신의 음향 감각과 영상 수준을 알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자신만만한 홍보문구인가! 대한극장의 70mm 초대형 스크린에 걸맞은 대작 영화들의 품격에 맞는 듯한 저 문구가, 실제로는 그렇게 높지 않은 나의 음향 감각과 영상 수준을 자극했고, <엑설런트 어드벤처> 선착순 티셔츠와 팸플릿 수령 실패의 쓰라린 기억을 뒤로한 채, <마지막 황제><늑대와 춤을><미저리 Misery(1989)>(‘그랑블루’라고 표기가 바뀌었지만, 첫 개봉 당시 제목이었던)<그랑 부르 Le Grand Bleu(1988)><도어즈 The Doors(1991)> 등의 영화를 처음 봤던 때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대한극장’이 함께 떠오른다.



대한극장에서 겪은 억울한(?) 일화도 있다. 중2 때 아주 큰맘 먹고(단골 게스트 재등장) 친구 K와 신당동 즉석떡볶이 골목에 구경을 간 일이 있었다.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학원을 빼먹었거나 다른 핑계를 대고는 과감하게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러다 위치를 착각하여 충무로역에서 내린 우리는 당시 <라 밤바 La Bamba(1987)>를 상영 중이던 대한극장 앞에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어딘지 찾느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고, 뒤돌아보니 어떤 낯선 아주머니가 계셨다. 


나는 그분을 잘 몰랐지만, 그분은 나를 아는 듯했고, 여기서 뭐 하냐고 물으시길래 뭔가 우물쭈물했더니 그 아주머니는 나를 한 번 보시고, <라 밤바> 간판을 한 번 올려다보시더니, 대충 인사를 하고는 가시던 길을 가셨다. 결국 길 가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태어나서 처음 신당동 떡볶이를 먹었고, 대한극장 앞에서 마주쳤던 아주머니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대한극장 앞에서 뭘 하다 들킨 거냐고 추궁하셨고, 나는 졸지에 중학생이 봐서는 안 될 영화를 보러 대한극장 앞을 서성이던 비행 청소년쯤으로 전락해 버렸다. 하다못해 그날 영화 <라 밤바>를 보기라도 했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몇 년 뒤, 고1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극장 앞에서 다 같이 모여 어딘가로 향하는 학교 행사 날이었다. 그날 대한극장에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섹스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Sex, Lies, and Videotape(1989)>의 간판이 걸려있었고, 이미 로드쇼나 스크린을 통해 그 영화에 대한 정보를 섭렵하고 있었던 나는, 언감생심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볼 생각조차 못 했지만, 로비 출입은 자유로웠기에 남는 시간 동안 로비 안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보라색 코팅 표지가 빛나던 팸플릿이었다. 


아마도 판매가는 1,000~2,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장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그 팸플릿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간절한 눈빛을 머금고 매대 곁을 떠나지 못하던 나는 큰 용기를 내 극장 직원에게 팸플릿 하나를 달라고 말을 꺼냈다. 제목에 ‘섹스’란 단어가 들어간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의 팸플릿을 살 수 있냐고 묻는 고등학생에게 돌아온 답이란... 아직도 보라색 표지의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팸플릿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사실 보라색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사대문 안 메인 개봉관들 가운데, 단관 시대를 접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앞서나갔던 곳은 종로 3가 서울극장이었다. 1989년 7월 29일, ‘서울 시네마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칸느-아카데미-베니스, 3개 관으로 새로 단장하여, 개관 특선작으로 칸느관에서는 이장호 감독의 <미스 코뿔소 미스타 코란도(1989)>, 아카데미관에서는 찰리 쉰, 톰 베린저 주연의 <메이저 리그 Major League(1989)>, 베니스관에서는 오우삼 감독, 주윤발, 이수현 주연의 <첩혈쌍웅 牒血雙雄(1989)>을 개봉했다. 


여기서 또 등장하는 나의 친구 K와 함께 서울 시네마타운 개관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개관일 아침에 종로 3가를 찾았고, 3개 관 중에 가장 메인 관인 칸느관에서 개봉하는 <미스 코뿔소 미스타 코란도>를 보기로 한 우리는, 과연 매표소 앞에 줄이 얼마나 길지 호들갑을 떨며 종로3가역에서 내렸다. 역시 새롭게 단장한 서울 시네마타운의 규모는 어마어마했고, 우리는 육중한 건물의 위용에 압도되었다. 


3개 관에 맞춰 3개의 매표소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분명히 가장 대형 관인 칸느관 매표소 앞이 뭔가 허전했다. 나란히 있는 아카데미관, 베니스관에는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꽤 길게 줄 서 있었던 반면, 칸느관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첩혈쌍웅>을 상영하는 베니스관 매표소가 압도적으로 북적였지만, 친구 K와 나는 배우에서 모델로 전향한 박영선 배우의 첫 영화 주연작을 응원하려는 마음이 컸기에, 꿋꿋이 칸느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보무도 당당하게 칸느관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친구 K와 나에게는 우리만의 금칙어가 하나 더 추가됐다.



1990년 크리스마스 시즌, 을지로 입구 중앙극장의 크리스마스 특선작은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아비정전 阿飛正傳(1990)>이었다. 하지만 아직 ‘왕가위’라는 이름조차 익숙지 않았던 데다,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양조위, 장학우, 유가령 등 배우들은 나름 친숙하지만, 당시 홍콩 영화의 대명사와도 같이 여기던 주윤발과 왕조현, 종초홍이 나오지 않았기에, <아비정전>은 당시 나의 관람 1순위가 아니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은 길보드 차트를 점령한 라이처스 브라더스 Righteous Brothers의 ‘Unchained Melody’가 삽입된 영화 <사랑과 영혼 Ghost(1990)>이 서울극장 두 개관에서 장기상영 중이었고, 단성사가 메인 관이었던 <다이 하드 2 Die Hard 2(1990)>, 국도극장이 메인이었던 <토탈 리콜 Total Recall(1990)> 등 할리우드 영화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아직 확고한 영화 취향이 잡히지 않았던 나는 앞선 세 편의 할리우드 화제작은 이미 섭렵한 터라,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기기 위해 어떤 영화를 볼까 고심하다 을지로 3가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공리와 장이머우 감독 주연의 <진용 秦俑(1989)>과 맞은편 스카라 극장에서 개봉한 니콜라스 케이지, 숀 영 주연의 <아파치 Fire Bird(1990)>를 선택했다. 


당시 살던 동네에서 을지로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갔는데, <아비정전>이 걸려있던 중앙극장은 마치 빈집과도 같은 스산함이 느껴졌고, 간판에 그려진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양조위 등 홍콩 스타들의 얼굴이 공허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홍콩 영화 열풍을 주도했던 <영웅본색>이나 <천녀유혼> 스타일의 영화는 아닌 것 같은데, 저 유명한 배우들이 총출동한다는데도 왜 사람들이 저 영화를 안 볼까? 나도 선택하지 않은 주제에 다른 사람들의 외면을 원망(?)하며, 내 발길은 을지로 3가로 향했었다. 


하지만 뒤늦게 <아비정전>의 매력을 발견하고 빠져들었으니, 당시 명보극장과 스카라극장에서 관람한 <진용>과 <아파치>에 대한 기억보다 <아비정전>의 간판이 내걸렸던 중앙극장의 풍경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영화관 내부, 2층과 연결된 돌계단이 마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온 저택과도 같았던 국도극장도 기억 한편에 남아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의 속편 격이었던 <그래가끔 하늘을 보자(1990)>를 보러 갔었는데, 시간표를 헷갈렸는지 이미 상영이 시작된 터라, 다음 회차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이 1층과 2층을 오르락내리락 극장 내부를 왔다 갔다 하며 상영예정작의 포스터며 로비 스틸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2층에서 1층으로, 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저택을 연상시키는 돌계단을 내려오려는데, 1층에 어떤 여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그중 젊은 여자분의 시선과 마주쳤는데... 그 사람은 바로 당시 10대 후반의 이미연 누나였던 것이다(실제 이미연 배우를 만나거나 한 적은 없지만, 내 마음속에선 늘 ‘이미연 누나’이다)! 당시에도 무대인사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짐작건대 자신이 주연한 영화의 개봉 주말에 메인 상영관에 나와본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숫기 없는 나는 그저 2층 계단참에서 이미연 누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요즘 같은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니 사진 촬영이라도 부탁할 상황은 전혀 아니었지만, 전단지에 사인이라도 요청해 볼걸. 3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도 매우 아쉽다.



이제는 흔적이 사라진 사대문 안 메인 개봉관 시절에 얽힌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옛날 사진들이 담긴 앨범을 펼쳐보는 일처럼 설레고 즐겁다. 앞으로 시간이 또 얼마간 흘러 지금을 되돌아보면 또 그 나름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에서 2022년 10월 출간한《영화간판도감 Painted Cinema Billboards》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 illustrated by 조대리(간판 사진 출처-영화간판도감 published by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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