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를 너무 많이 본 청소년 7
1988년 출간된 이문열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1989년 작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영원한 월드 스타 강수연 배우와 역시 당시 청춘스타로 주목받던 손창민 배우가 주연을 맡고, <밤의 열기 속으로(1985)><레테의 연가(1987)><아메리카 아메리카(1988)>등 멜로드라마 스타일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던 장길수 감독의 4번째 장편 영화 연출작이다.
원작 소설이 당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출간 직후 발 빠르게 영화화가 되었고, 1990년 28회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총 7개 부문을 휩쓸었고, 국도극장 개봉 당시 단일관에서 3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어 흥행에도 성공했다. 개봉 당시 아직 고등학교에 입학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던 나는 ‘연소자 관람 불가’인 이 영화를 당시 국도극장에서 관람할 수 없었고, 역시나 비디오출시를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제목이 너무 있어 보이지 않는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니! 훗날, 그리스 신화 ‘이카로스의 추락’을 차용한 오스트리아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집 ‘Das Spiel ist aus(놀이는 끝났다)’의 국내 번역 제목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예전에 느꼈던 그 거창한 감흥이 다소 옅어지기는 했다.
아무튼 당시에는 큰 기대를 안은 상태에서, ‘미디아트’라는 브랜드를 통해 홈비디오로 출시된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봤고, 벚꽃이 흩날리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첫눈에 윤주에게 반해버린 형빈처럼 나도 강수연이라는 배우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10년의 세월 동안 악연과도 같은 인연으로 이어진 윤주와 형빈의 지긋지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안에서 혼란의 원흉인 윤주를 연기한 강수연 배우는 청순한 20대부터 부스스한 파마머리의 퇴폐적인 30대까지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원작 소설도, 이를 각색한 영화도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넘었고, 그만큼의 시간 동안 세상도 많이 변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매체도 다양해져서, 마침 KMDb VOD를 통해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의 감흥은, 어린 시절 무수한 환상을 가지고 봤던 그때의 내가 아니어서인지,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윤주를 대하는 형빈의 고루하고 진부한 가부장제에 찌든 사고방식도 불편했고, 미국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담아 온 ‘해외 로케이션’의 특장점도 딱 그 시대에만 통용되던 홍보 요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 이 글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2022년 7월 30일 발간한《아카이브 프리즘 #9 Summer 2022 "리와인드 - 비디오 시대의 어휘들》에 기고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