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등이 부심 따위 저 멀리 바닷물에 던져버리다
2009년 크리스마스이브. 생애 첫 스마트폰으로 아이폰 3Gs를 나에게 선물한 그날부터 시작된 스마트라이프는 온통 애플 천지였습니다. 그전에 아이팟 시리즈를 섭렵하며, 훨씬 더 전에 집채만 한 애플 PC를 가지고 친구들에게 뻐기던 시절부터 이미 저는 앱등이였습니다.
2년 약정을 채우지 못하고, 줄줄이 발표되는 새로운 아이폰 시리즈를 섭렵하고, 아이패드를 사고, 애플워치를 차고, 맥북을 하고, 에어팟 프로를 귓구녕에 꽂고, 그전에 사용했던 아이팟 클래식이며 아이팟 U2 에디션을 고이 모셔두며, 그렇게 '앱등이'로 살아왔습니다.
인정합니다.
TV나 소셜미디어에 셀럽, 연예인, 정치인 할 것 없이, 하다못해 회사에서 오가며 스치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이폰을 쓰는 경우엔 있어 보인다던가, 똑똑해 보인다던가, 세련되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엔 셀럽도 연예인도 정치인도 아니지만, 저도 슬쩍 그 무리에 끼워 넣어, 아이폰을 꺼내서 손가락을 깔짝대면 나도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스스로 분류한 셈입니다.
그렇게 별일 없이 백년해로 하는 부부와도 같이 애플과의 애정 전선에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라는 굳은 믿음으로 살아온 어느 날이었습니다.
때는 2024년 7월 27일 토요일 오후 12시 29분.
사랑하던 애플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제가 저장해 둔 이메일 주소로 된 애플 ID의 암호가 변경되었다고.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내 사랑 애플이 알려준 이 귀중한 정보에 너무도 감사해하며, 미친 듯이 'Apple ID 계정 페이지 로'(띄어쓰기 포함) 이동하라는 링크를 힘차게 클릭했습니다. 일단 연결 불가.
주소창을 다시 보니 '로'가 붙어있군요. 주소창에 한글은 절대 안 되지, '로'를 가볍게 삭제한 후 다시 접속.
최근에 새롭게, 그리고 예쁘게 단장한 애플 ID 변경을 위한 첫 화면이 저를 반깁니다. 일단 기존 암호를 입력하라는 친절한 애플의 속삭임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자판을 두드립니다. 마침 PC로 접속한 상태였거든요.
기존 암호를 입력한 순간이었습니다. 오후 12시 34분.
갑자기 애플 앱스토어로 연결되어 있던 세련된 디자인으로 2006년 이후 저와 함께 해 온 저의 또 다른 사랑 현대카드의 알림이 미친 듯이 울립니다.
Apple-엔에이치엔케이씨피(주)
110,000원 일반승인
12시 34분에 동일한 금액, 동일한 판매처 이름으로 네 건이 승인되었다는군요.
갑자기 놀란 저는, 저의 더블 러브 애플과 현대카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아직 굳건했기에, 알림 자체가 잘못 울린 거라 믿고,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와 특수문자를 총동원해 새롭게 짜고 있던 새 암호를 두 번 입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새 암호 재입력 직전인 12시 37분, 다시 110,000원 승인 알림이 도착했고, 정신 차려보니 순식간에 55만 원이라는 거금이 승인된 후였습니다.
집안이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옛말이 떠오른 순간이 곧이어 찾아옵니다.
오매불망 사랑하던 애플로부터 온 이메일의 발신자명을 본 순간,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발신자명 'Apple계정'에서 'ㅣ'이 필기체였던 것이었고, 그제야 감춰진 이메일 주소를 펼쳐보니 메일주소가 'fzszdmmoh@outlook.it'였던 것을 왜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야 보게 되었을까요? 차라리 끝까지 보이지나 말지.
애플과의 이별블루스는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