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청년편
요즘 대학 강의실에 앉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귀에 가장 자주 들어오는 말이 있습니다. “개좋아요”, “개싫어요”, “대박이에요”, “쩔어요” 같은 단어들입니다. 원래 ‘개’라는 접두사는 욕설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감탄사나 강조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배고파요”, “개피곤해요”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말들이 지나치게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언어의 맥락과 수준을 점점 좁혀 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양했던 표현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결국 인간의 사고마저 단순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강의를 하면서 전문적인 개념이나 학문적 용어를 어쩔 수 없이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요. 최근 학생들이 제 강의를 듣다가 낯선 단어가 나오면 곧장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서사 구조’나 ‘담론’ 같은 기본 개념조차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문제는 단순히 모르는 단어가 있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다양한 어휘를 접하거나 활용해 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어적 맥락을 읽어내는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곧 사고력의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언어가 생겨나는 것은 사회적 활력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신조어는 의미의 정교함보다는 ‘재미’나 ‘간편함’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텐(억지 텐션)”,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같은 말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일시적인 유행어로 빠르게 소비되지만 정작 맥락에 맞지 않게 무작정 사용되면서 언어의 의미적 깊이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단지 웃음을 주는 장치로 기능할 뿐 언어가 원래 지닌 소통의 정밀함과 다양성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언어가 이렇게 단순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인간이 언어적으로 더 빈곤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교한 단어 선택을 해내고 있는데 정작 인간은 몇 개의 감탄사와 신조어에 갇혀 어휘력조차 기계보다 못한 세대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고와 창의력, 뇌활동을 확장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그 도구를 스스로 무디게 만들고 있다면 인간의 전문성과 고유성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다움’은 결국 언어의 다양성에서 비롯됩니다. 서로 다른 단어를 구사하고 맥락에 맞는 언어적 선택을 해내는 능력이야말로 인간 고유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 세대가 더 많은 언어적 자산을 확보하고 이를 섬세하게 활용할 수 있을 때 AI와 구별되는 사고와 창의성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대학 강의실에서 그리고 일상 대화 속에서 다시 한 번 언어의 품격을 회복하는 일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세대의 중요한 문화적 과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