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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Jun 12. 2020

그날 밤, 모든 상담사는 통화 중이었다.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어젯밤은 견딜 수 없이 우울한 날이었다.

약도 잘 챙겨 먹고 나름 글도 열심히 쓰고, 대학원 진학 준비도 착실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울이 몰려왔다. 나는 아직 쪼렙이라 종이 방패만 들고 있는데 폭풍 같은 우울이 다가오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왜 우울한지 물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우울해요. 그냥. 그냥. 어릴 때부터 우울했던 것 같기도 하고.

상담해주던 선생님은 나는 주관적 우울이 더 높다고 했다. 겉보기에, 객관적 우울은 그리 높지 않다고. 그러니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라 했다. 본인이 보시기에는 믿음직스럽고(?) 착실해 보인다고. 그게 우울한 거랑 무슨 상관이죠 묻고 싶었지만 그냥 삼켰다.


이전 상담에서 자살하고 싶거나 자해를 하고 싶으면 누구한테든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때 알려준 전화가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어쩌구저쩌구.. 희망한 메시지를 전하는 안내문구가 나오더니 들려오는 말은 허망했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 중입니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 중입니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 중입니다.


통화량이 많아 상담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순간 1시간 동안 휴대폰에 1393을 눌러놓고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내 모습이 너무 웃겼다. 혹시나 하고 3분 정도 더 기다렸지만 들려오는 말은 같았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 중입니다.


그럼 나는 이제 누구랑 이야기를 해야 하지? 문득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가까운 사람에게 내 우울을 이야기하면 우울이 병처럼 옮겨갈까봐 무서워서 혼자 이불을 덮어썼다. 그렇게 혼자 울다가 검색창에 1393 전화 후기를 검색했다.

전화를 했는데 상담사가 112에 신고해서 경찰이 왔다는 이야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후련했다는 이야기.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1393에 전화를 했다. 조금이나마 기대한 내가 바보였을까. 아니면 나처럼 힘든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은 걸까. 들려오는 말은 이번에도 같았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 중입니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 중입니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 중입니다.


그날은 자살시도를 했다가. 고양이를 만지다가. 핸드폰에 유서를 남겨보다가.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 약을 더 먹고 새벽 3시쯤 잠이 들었다.




다시 1393에 전화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또 모든 상담사는 통화 중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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