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채운 Aug 28. 2019

샤가, 미치다[1장-2]

제1장. 유랑자, 헤매는 자[1-2]

깜짝 놀란 한현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너무나도 강렬했던 아까의 꿈을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느낌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그의 흐릿한 눈 사이로 하얀 천장과 파란 커튼, 그리고 아까 검은 양복의 그 남자와 금발 머리를 한 잘생긴 남자 한 명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본 한현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금발의 남자가 더 누워 있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여기가 어딘가요?”

     

“병원.”

     

“그러면 놀라잖아.”

     

검은 양복의 남자가 한현의 말에 대답을 하자 금발 머리의 남자가 제지했다. 뮈르뮈르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병원에선 담배 금지라고.”

     

림몬이 투덜거리자 뮈르뮈르는 뭐가 우스운지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불이 난다고? 그건 축제 아냐?”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몇 번을...”

     

“지...”

     

림몬의 말을 자른 뮈르뮈르가 말을 하려고 하자 림몬이 그의 입을 막고서는 속삭였다.

     

“아직 때가 아니야.”

     

뮈르뮈르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얘는?”

     

“검사 결과 기다려 보도록 해.”

     

한현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말을 나누고 있는 두 남자들을 향해 몸을 일으켰다.

     

“전 남한의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가 본데...”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세 남자는 동시에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그 때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가 들어와 림몬에게 검사지를 건넸다. 검사지를 보는 림몬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뮈르뮈르가 그의 어깨를 왼팔로 툭 쳤다. 그러자 림몬이 일어나며 뮈르뮈르에게 따라 오라는 듯 손을 까딱했다. 그리고는 한현을 향해 말했다.

     

“소개가 늦었죠. 전 의사 림몬 입니다. 쓰러지셨기 때문에 아직 좀 더 누워 계셔야 합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한현은 의사라는 말에 조금은 안심을 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림몬은 뮈르뮈르를 비상구 계단으로 데려가서는 위, 아래를 살펴 본 뒤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결과가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뮈르뮈르는 놀라며 림몬에게서 검사지를 받아 들었다. 검사지에는 모두 ‘확인 불가’라는 글자만이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뮈르뮈르는 머리를 헝클이며 소리쳤다.

     

“몇 백년간 아무 일도 없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고!”

     

안 그래도 영혼들이 점점 늘어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참에-야근 수당이 있나, 복지가 빵빵 하나-이런 대형 사고라니, 그는 꼭지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뮈르뮈르를 보며 림몬이 말했다.

     

“아무래도 그 분을 만나는 게 좋겠다.”

     

뮈르뮈르가 검사지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말이야 쉽지! 그러다 내 잘못이면 어떻게 하냐고.”

     

한현은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기회가 온 건지도 몰랐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저들이 하는 대로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지도 불분명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문을 열고는 밖의 동태를 살폈다. 의사와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복도를 걸어 다니고 있었고 의자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백인, 흑인, 황인종 모두가 보이는 걸 보니 여긴 미국? 영국? 우선은 병원 밖을 나서서 경찰서에 가 볼 생각이었다. 그의 짧은 영어가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순위는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현은 혹시나 몰라 림몬의 가운 하나를 집어 들고는 문을 열고 나섰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까지 내려 갈 생각이었다. 그러면 출구가 보일 것이다.

     

환자들이 양옆에 앉아 있고 길게 쭉 늘어선 외래 진료실을 걸어가자 마치 런웨이를 걷는 모델이 된 것만 같았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웃을 일은 있기 마련이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지나고 왼쪽 코너를 돌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그러자 나타난 건 뮈르뮈르와 림몬이었다. 놀란 한현은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숨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깨달았다. 그들은 한현과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으며 한현은 그것을 모국어처럼 알아들었고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뮈르뮈르는 보지 않고도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적중 한다고 하던가. 한현이 사실을 깨닫고 도망가려는 찰나, 화장실문이 거칠게 뮈르뮈르의 발에 의해 열려지고 그와 림몬이 화장실 안에 들어왔다.

     

“아 야, 싸게 싸게 야기하자. 지금 여기서 뭐하는 겨?”

(야, 빨리 빨리 이야기하자. 지금 여기서 뭐하냐?)

     

한현은 지금의 상황도 상황이지만 갑작스런 뮈르뮈르의 사투리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만 좀 놀려. 많이 놀랐죠? 안 그러면 또 도망갈 거 같아서. 자세한 얘기는 뮈르뮈르를 따라가서 들어요.”

     

림몬의 말에 한현은 잠시 고심했다. 또 내가 아무리 질문들을 던져 봤자 이때까지처럼 대답을 안 해주겠지? 그럼 이대로 이들을 따라간다? 나는 그렇다 쳐도, 저들은 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이건 꼭 대답해 준 다 약속해 주세요. 그럼 이젠 도망치지 않고 따라 갈게요.”

     

뮈르뮈르가 피식 웃으며 한현을 잡으려고 하자 림몬이 입을 열었다.

     

“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은 뮈르뮈르, 영혼들을 관리 하고 있죠. 저는 아까 말한 대로 의사에요. 뮈르뮈르가 당신을 여기로 데려오고 그분에게 가려는 건 자기 할 일이기 때문이에요.”

     

‘영혼, 관리?’

     

한현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영혼이라니, 혹시 이 사람들 사이비 종교 단체인가? 아님 미쳤거나.

     

“아따 그리 말해 뿌면 야 머리빡이 더 혼잡해지지 않건냐.(아, 그리 말하면 얘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잖아) 야, 인간- 너도 궁금한 게 많을 테니 그냥 그거 알아보러 간다고 생각하면 OK다."

     

뮈르뮈르를 바라보던 한현은 잠시 화장실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 저리 말하는 걸 보면 적어도 미쳤을 확률은 적어 보이고 그럼 사이비종교 단체라는 건데, 거기 가서 돈 좀 바치고 절만 좀 하고 오면 된다니까 까짓것, 모 아니면 도다!’

     

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가 화장실 밖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갔다.

     

“저기... 엘리베이터가 여기 있는데.”

     

그러자 림몬이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댔다. 그들은 긴 복도 하나를 더 지나 오른쪽 코너를 돌아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뮈르뮈르가 입을 열었다.

     

“너 내가 찌그려져 있으라고 했지! 너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용한 일이야. 알았어?”

     

“직원용 엘리베이터에요. 이걸 타야만 해요.”

     

림몬의 설명에 한현은 뮈르뮈르를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엘리베이터 층수가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세 사람은 십 몇 층을 내려가는 동안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목적지인 지하 3층에 도착하자 주차장이 보였다. 직원용이라서 그런지 차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던 한현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차들에 회사로고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럼 제 3세계인가? 이거 풍년이네 풍년. 사이비 종교 단체에 대사관도 없을지도 모를 나라라니. 한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둥 몇 개를 지나자 익숙한 자동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 걸 보면서 림몬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이번에도 한현은 뒷좌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27년 인생에 처음 겪는 이딴 일들에 그는 끓어오르는 짜증과 용솟음치는 분노를 삭여야만 했다. 그 때 전화기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뮈르뮈르는 자동차에 꽂혀 있던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은 최신형 같은데, 그럼 이런 나라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된다는 말 아니겠어.’

     

한현은 신뢰감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면서 조금이나마 뮈르뮈르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됐어?”

     

“그래서?”

     

“휴... 그래, 언더스탠드 했고.”

     

“한 두 번이냐. 어.”

     

“땡스하다, 대사님. 알았어.”

     

뮈르뮈르가 휴대폰을 내려놓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이번에는 전화를 받는 뮈르뮈르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작가의 이전글 옥이 매거진-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