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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적과 발산 Dec 15. 2022

전문가와 ㅈ문가는 한 끗 차이다.

ㅈ문가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전문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뢰감이나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것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중매체에서 정보의 무게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텔레비전과 신문이었다.

일반인이 다수의 타인들에게 자신의 지식이나 주장을 전달하는 것은 지금보다 제한적이었고 그로 인해 각 분야별 전문가의 주장의 힘은 정확히 측정할 순 없지만 지금보다 강했었다.(물론 그 당시에도 엉터리 전문가들이 많았다.)

매스컴에 대한 신뢰도 또한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발명을 기점으로 개개인들이 자신만의 의견을 영상이나 글로써 표현하고 그 내용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퍼트리기가 정말 수월해졌다. 이는 '자칭 전문가'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개인의 소규모 정보 전달이 분명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성장 배경에 따라 각자만의 크고 작은 통념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10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10개의 통념 렌즈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정보를 접할 때 정보를 정보 자체만이 아닌 말하는 사람에 대한 호감이나 외적인 요소를 가감하여 받아들인다.


똑같은 1이라는 같은 정보가 있더라도 자신이 호감을 가진 사람의 정보는 1보다 크게 느껴지고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의 정보는 1보다 작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좋고 싫은 대상을 나누는 기준은 정보 전달자가 나와 같은 통념을 가졌는가에 따라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라는 사람이 어떠한 정보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자신이 가진 기존 정보를 강화하는 지식만을 추구하게 되면 그 사람은 전문가가 아닌 'ㅈ문가'가 된다.


'앎'에는 세 가지가 있다.

1. Known knowns 아는 것에 대한 앎

2. Known unknowns 모르는 것에 대한 앎

3. Unknown unkowns 모르는 것에 대한 무지


'ㅈ문가'들의 첫 번째 앎에만 초점에 맞춘 채로 자아도취된 상태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우연과 실력의 차이를 모르고 단순과 복잡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떠들어 댄다.

무식하니까 용감하다는 것을 몸소 얼굴을 드러내면서까지 한다는 점에 있어서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 같은 ㅈ문가들의 무지는 무지가 무지를 낳는 피드백으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더 강화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ㅈ문가'들이 출현하고 있는 세상에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정보 전달자가 자신의 주장에 책임을 지는지를 보면 된다.

의사는 자신의 의료행위가 정해진 프로세스의 범위를 벗어났을 때 책임을 진다.(의료사고는 의사에게 있어서 중대재해다.)

비행기를 운행하는 파일럿도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을 진다.(파일럿의 목숨과 승객들의 목숨이 달려있다.)


그런데 주식 리딩방을 운영하는 김 씨가 A라는 주식이 급등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예측이 틀린다고 해서 책임을 지는가? 리딩방 운영자에게 있어서 책임은 제로에 수렴한다.

이는 주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 경제학자 등 우리가 평소에 신뢰의 대상으로 삼던 작자들이 해당분야에 전문가가 아닌 ㅈ문가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행동에 책임이 동반되지 않는 주장은 거짓말이거나 쓸모없는 말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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