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부채꼴처럼 점점 넓은 곳을 향한다
옷방 서랍을 열었다. 긴 바지를 꺼내고 입고 있던 반바지를 벗었다. 추적추적 빗소리가 좋아 마당에서 글을 쓰는데 허벅지에 닭살이 돋는 것이 아닌가. 비가 와도 눅눅하기만 했던 며칠 전과는 다른 공기가 찾아왔다.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야의 희미한 그것처럼 계절의 접점이 점점 얇아져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봄, 가을과 같은 접점의 계절이 사라져간다. 곤충들, 식물들, 동물들 그리고 인간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자연의 섭리가 병들어가는 지구의 파상공세에 백기를 든 것처럼 말이다.
난 여전히 이 곳 양평의 마당있는 집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수, 목, 금 이었던 주3일 코딩수업은 화요일도 하게 되었다. 수강생이 늘어나서 화요일이 추가된 것은 아니다. 수강생들이 대부분 1년~2년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데, 초등학생이었던 친구들이 중학교를 준비하며 영수학원에 밀려 수업요일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대한민국하면 국영수 아니던가.
금요일은 중학교 코딩수업을 가는 날이다. 2주에 한번씩 가는 수업이라 가끔씩 잊을 때가 있어 곤욕을 치른다. 다행히도 오늘은 잊지 않았다. 코딩의 기본문법을 가르친 후, 코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문제들을 풀어가는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게임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게임만드는 건 도구사용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비슷해서 설명서만 보며 스스로 따라할 수 있다. 이해없이 따라 만든 과정에 비해 결과는 화려해서, 코딩의 논리와 이해와 더불어 긴 호흡으로 문제를 마주해야하는 상황에서는 대부분 곤란해한다. 쇼츠, 릴스와 같이 짧은 호흡의 콘텐츠들에 익숙해진 우리들이다.
얼마전 아내와 나는 결군의 초등학교 마지막 공개수업을 참관했다. 전교생 39명의 작은학교, 학년에 한반인 이 학교에서 결군은 유치원시절부터 6학년인 지금의 마지막 공개수업까지 잘 다니고 있다. 9명의 학생들이 1교시에는 심폐소생술을 배웠다. 키득키득 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자유로운 분위기 속, 선을 넘지 않는 익숙함이 베어 있었다. 3교시 국어수업에서의 나의 꿈에 대해 글을 쓰는 시간은 너무 재미있었고 말이다. 결군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매일 매일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단다. 자신의 소설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실 결군은 이미 올해 초부터 집필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약 200여페이지를 써오고 있는데, 아직 멀었다고 한다. 복선을 깔지도 않았는데, 복선을 만드는 것만 1년이상 걸린다고 했다. 절대로 읽으면 안된다고 말해놓고선 노트를 거실식탁에 턱하니 놓는 순수함은 엄마와 아빠에게 주는 절대적인 신뢰감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여 우리는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어느날 나는 아무생각없이 세 페이지 정도를 읽은 적이 있었고 아내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다시는 열어보지 않기로 맹세했다. 결군은 jk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와 판권계약을 맺은 출판사 '문학수첩' 에 자신의 원고를 제출할 것이라 공언한 상태이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책을 집어들고, 자기 직전까지도 책을 놓지않으며 한 달에 60여권의 책을 읽어나가고 있는 결군이 어떤 소설을 써낼지 기대된다. 인세가 나오면 엄마아빠 세계여행을 보내준다나 뭐라나.
아내는 이제 모자를 잘 쓰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눌려있기도 한다. 독하디 독한 항암제로 인해 전멸되었던 모근은 항암치료가 끝나자 마자 봄날의 새싹처럼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생명력은 놀랍다. 자연의 어떠한 것들도 자신의 생명력을 억누를 수 없듯이 모근 또한 그러했다. 새까맣게 모근이 채워지니 짧은 머리지만 스타일이 솰아난다. 짧은 머리에 귀걸이를 하면 뭔가 셀럽을 보는 느낌이다. ㅋㅋㅋㅋ 결군의 공개수업 참관도 외출도 이제는 모자를 쓰지 않는다.
항암치료 후 수술 결과는 매우 좋았다. 약 1.7센치의 종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림프로의 전이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 달여간의 방사선치료도 끝이 났으며 남은 건 3주에 한번씩 진행하는 표적치료 뿐이다. 첫 진단 후, 첫 진료까지의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 오늘의 이 순간을 우리는 염원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10년, 20년, 30년 그 후에도 지금의 염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이것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의문이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여기까지 왔냔 말이다. 나의 어떤 행동의 결과가 희미하거나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뭔가 확정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면, 시작하지 않는 나는 그런 존재아니었던가?
우리 마을 초등학교 앞에서 인허가를 받으려던 레미콘 공장의 반대운동에 뛰어들었고 양평군청의 인허가 불승인으로 결국 일단락되었다. 나란 존재는 여기서 끝냈어야했다. 그렇지만 나는 뜻이 맞는 몇몇 분들과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교육환경법 개정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2332 교육환경법 개정 추진위원회'는 그렇게 발족되었다. 운영위원과 자문위원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교육환경법 제9조의 학교상대정화구역 200미터내의 금지시설 항목에 2332의 업종코드를 가진 레미콘,콘크리트 제조업을 신설하도록 개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해 입법청원을 목표로 서명운동을 진행중이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오프라인 서명부도 만들고 온라인 서명부도 만들어 양평관내를 시작으로 '2332서명운동' 을 확대중이다. 얼마전에는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에게 발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며 연락을 받았다.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겠다.
삶은 부채꼴처럼 점점 넓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2332 교육환경법 개정' 을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세요~!
주변 사람들에게 퍼뜨려 주세요~!!!
학교주변 상대정화구역 200미터 내에 레미콘,시멘트,콘크리트 제조공장이 들어올 수 없도록 개정 청원을 하려합니다.
온라인 서명:
2332교육환경법 개정 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