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안 다니는 맛을 느껴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씁쓸함을 견뎌왔는가
"돼지갈비 1100원/100g , 찌개용 돼지고기 3근 만원"
한결축산에서 문자가 왔다. 이곳은 매주 수요일에 돼지를 잡는데, 이 날 가면 얼리지 않은 생고기를 앞다리도 아니고, 뒷다리도 아니고, 목살도 아닌 어딘지 정확히 모르는 부위의 생고기를 3근 만원에 살 수 있다. 제육볶음이나 찌개를 끓일때, 잘리기 좋을만큼만 살짝 익힌 후, 비계를 어느정도 떼어내고 먹으면 쫀득쫀득 참 맛난다. 군대시절, 철원군 동송읍 어느 노포식당에서 먹었던 그 쫄띠기 고기의 맛이 난다고나 할까.
오늘 아침 9시 30분에 일어난 나는 잠옷을 입은 채로, 어제 한결축산에서 사온 돼지갈비3.4kg을 꺼내 핏물을 빼기 위해 물에 담궈놓는다. 찌개용고기는 매진되어서 못샀다. 나만 알고 싶은 곳이었는데, 아마도 소문이 난 듯하다. 다음번에 수요일에 맞춰서 가야겠다. 1시간이상 핏물을 빼야하지만, 아점으로 아내와 함께 매운갈비를 먹어야 했기에 30분만 빼고 1kg만 건저내어 깨끗한 물을 붓고 월계수 잎 몇 장과 통후추, 설탕을 넣고 끓여대기 시작했다. 나머지 2.4kg의 갈비는 엄청 커다란 냄비에 담고 갈비양념을 부은 다음 양파, 대파, 감자를 넣고 끓였다. 매운 갈비는 아내와 나의 아점, 양념갈비는 결군의 오늘 저녁식사이다.
"우리 정사장님(아부지)은 이 맛에 직장을 안 다니셨나봐"
매운 갈비에 들어갈 마늘을 다듬으며 아내에게 건넨 말이다. 우리 아부지, 정사장님(엄마는 성여사)은 직장을 진득하니 다녀본 적이 없으시다.
"따박따박 다달이 고정적인 월급 한번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것네, 남들 다하는 저축계획 좀 세워보게"
내가 자라면서 성여사로부터 귀에 박히도록 많이 들었던 말이다. 우리 정사장님은 고정적인 월급보다는 이 사업, 저 사업하느라 몇 달동안 성여사에게 십원 한장 가져다주지 않다가 갑자기 돈뭉치를 안겨주곤 했었다. 통장으로 주는 것이 아니고, 정사장님은 정말 지갑이 터지도록 현금을 가득넣어갖고 와서는 어깨 딱 펴고 돈뭉치를 성여사에게 주었었다. 그러면 성여사는 "노가다꾼처럼 그런식으로 돈 좀 갖고 다니지마!" 라고 소리치고는 했다.
우리 정사장님은 이 맛을 진즉에 아셨구나, 미리 프로그래밍된 안드로이드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위해 이를 닦고, 세수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거울 한번 슥 보고는 문을 나서는 '나인투식스'의 삶을 걷어차 버리고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맛있는 밥을 지어 먹는 이 맛을 아신거구나, 물론 성여사는 몰랐기에 정사장님과 상극처럼 지내신 거겠지.
직장을 다니지 않는 맛은 나에게는 너무나 달콤하다. 하지만 이 달콤함은 정사장님께서 느끼신 달콤함과는 조금은 다르다. 나의 달콤함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처럼 쓰디쓴 맛을 느낀후의 달콤함이라고나 할까. 달콤함 뒤의 씁쓸함은 더 강한 씁쓸함이고 씁쓸함 뒤의 달콤함은 더 강한 달콤함이다. 직장 안 다니는 맛을 느껴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씁쓸함을 견뎌왔는가.
우리 정사장님은 그 씁쓸함이 있었을까, 만약 있었다면 성여사와 좀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 달콤함을 즐기지 않았을까, 나의 씁쓸함을 배우자가 알아주는 것만큼 강한 달콤함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푹 삶은 뒤 나온 육수베이스와 맛난 단짠단짠 양념으로 졸여서인지 매운갈비는 대성공이었다. 물론 결군을 위한 양념갈비도 성공이다. 잠옷도 벗지 않고 갈비를 해댄 탓에 잠옷에 냄새가 잔뜩 밴듯 하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이제 수업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