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통의 가족들

보통의 가족의 속내는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겉은 그러하진 않지만.

by 우노

성여사는 '사람이 욕심이 있어야 되' 라고 우리들에게 자주 말했었다.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허허 웃으며 세상 맘 편한 사람의 얼굴로 삶을 살아가던 아부지의 모습을 행여나 자식들이 닮을까 노심초사하던 그 얼굴이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다른 집처럼 월급을 따박따박 가져다주지 못하던 아부지의 모습, 미래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가장의 모습, 밖에서만큼 살갑지도 재밌지도 않은 남편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은 욕심이 없다는 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성여사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욕심' 이라는 단어는 분수에 넘치게 탐내는 마음 이라는 뜻인데, 성여사는 진정 자식들이 이렇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었을까? 운동선수들에게 '욕심'은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하던데 이런 의미였겠지?


돈에 치밀하지 못한 아부지가 화장대위에 무심코 올려놓은 천원 몇장, 오백원짜리 동전 몇개를 '모르겠지?' 라는 철부지 생각으로 슬쩍하는 날이면 성여사는 CCTV를 달아놓고 그 장면을 관람했다는 듯, 확실한 어투로 나를 추궁했다.


"가져갔지?"


거짓말도, 하는 놈이 한다고 잠시만 머뭇거리며 "아니요" 라고 대답하면 성여사는 어김없이 냉장고 옆에 세워놓은 파리채를 들고 와 내가 파리라도 되는 냥 세게 내리쳤다. 그리고, 이런 날 밤이면 성여사는 자고 있는 내 방문을 슬며시 열고 들어와, 파리채의 그물모양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내 허벅지와 팔뚝에 연고를 발라주고 갔다. 그러면서 내가 안 자는 걸 알고 있는 듯,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 하면 못써, 거짓말 버릇 들면 어른이 되도 못 고친단 말여" 라고 선명하게 말해주었다. 성여사는 공부 잘 하란 말보다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을 더 많이 했었다. 이 때부터인가 나는 거짓말을 매우 많이 시도했지만 번번히 상대방에게 들킨적이 많았다.


보통의 가족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겉으로 보면 모르지만 속을 보면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내가 어렸을 적의 성여사와 아부지는 잘 몰랐나보다. 다른 가족의 아내들을 그렇게 부러워하던 성여사는 그 아내들의 속내를 알리가 없었을터이고, 다른 가족의 남편들을 부러워하던 아부지는 그 남편들의 속내를 알 턱이 없었다. 보통의 가족들은 겉으로 보면 비슷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속을 보면 다들 비슷하는 것을 말이다.


어제 본 영화 '보통의 가족'은 가만히 팔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기도록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다. 정직하게 살려 노력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없이 살아가려는 의사 동생과 돈 욕심에 인면수심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않는 변호사 형의 가족들의 도덕적 딜레마와 갈등을 보여주는 스토리이다.


물론, 제목처럼 이들의 삶은 외적으로 보았을때는 절대로 '보통의 가족'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가족들이 보여주는 갈등의 뿌리와 그를 뽑아내려는 정서와 행동들은 여타 '보통의 가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결말마저도 보통이라 할 수는 없다. 정정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살던 의사 동생은 괴물이 되어버린 아들 앞에서 뒤로 걸어가고 돈 욕심에 도덕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살아가던 변호사 형은 요물이 되어 버린 딸 앞에서 앞으로 치고 나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인간의 삶을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관으로 이끌며 살아가는데에 자식은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자식이 괴물이 되면 부모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만약 저게 나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상황 설정은 현실과는 괴리가 있어보이지만, 그 가족의 내면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통의 가족' 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끔찍한 설정으로 파고 들었던 영화 같다.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이 뱉는 말들, 행동들을 보며 또 부모의 행동들을 보며 결코 가볍게 넘기지 못할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




#보통의가족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