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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Dec 28. 2020

당신의 웜홀은 어디인가요?

추억



날 좀 내버려 둬


겨울이 다가오니 할머니는 할 일이 많아집니다.

다름 아닌 아이들의 스웨터를 짜야하는 일.

할 일은 많은데 도무지 아이들 틈바구니에서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는 실뭉치를 자루에 담아

혼자 있을 만한 곳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러나 좀처럼 조용하게 몰두할 곳이 없습니다.

숲 속도, 산 꼭대기도, 심지어 달 까지.... 할머니는  웜홀로 들어가 버리셨습니다.

그곳에서는 평화롭게 할 일을 하셨을까요? ^^

할머니가 혼자 있을 곳으로 가실 때마다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날 좀 내버려 둬!"





당신의 웜홀은 어디인가요?


대학 새내기 시절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 분출의 욕구가 얼마나 컸을까? 모두들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춤추러 가는데 음주가무에 영 소질이 없는 나는 새내기 환영파티에서부터 그들과 어울릴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혼자 놀 거리를 찾아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손 붙잡고 다녔던 광화문, 종로 일대의 서점이 생각났다. 혼자이니 누구의 방해도 없고, 오래 있는다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으니 서점은 최대 놀이터가 되었다.

눈, 비, 더위와 추위까지 공짜로 막아주고, 눈과 귀가 호강하는데 이 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누가 부르는 듯이 달려 나가던 그곳은 몇 시간을  있어도 나올 때면 늘 아쉬웠던 나만의 웜홀이었다.


웜홀을 사수하라!

남편이 남자 친구였던 시절.

연애를 처음 해 본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것도 행복했지만 한편으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서울의 동쪽 끝과 일산에 살았던 우리가 만나는 중간 지점이 광화문이니 내가 애정

하는 장소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음에 기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쁜 회사일 때문에 주말도 출근해야 하는 남자 친구 덕분에 나의 웜홀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었다. 자주 만날 수도 없고, 만나도 잠깐 밥만 먹고 헤어져야 하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쿨' 하게 보내주는 여자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애를 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물었다.  섭섭하지 않았냐고.


"엄~ 청~ 섭섭했지~"


"날 좀 내버려 둬!"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생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웜홀은 영원할 줄 알았다.

웜홀은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갈 줄이야... 보통은 종일 엄마와  붙어 있는 아이들이 엄마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데 하루 종일 할머니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우리 아이는 어찌 된 일 인지 엄마 껌딱지였다. 일의 특성상 야근이 많고, 주말 출근이 잦은 남편은 육아에서 열외였다. 평일엔 친정 엄마한테 신세를 지니 그 나머지 시간의 육아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나도 가끔씩 외치고 싶었다.


" 날 좀 내버려 둬! 나만의 그곳으로 가고 싶다.!"



다시 찾은 웜홀

아이가 빨리 크길 바랬다. 둘째가 더 이쁘다는 친구의 말은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아이 하나도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둘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둘째를 낳지 않았다. 어찌 보면 모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이기적인 엄마일지도 모르겠다.

10년이 지나니 내게도 조금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지난날의 나의 웜홀이 오랫동안 나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면 다시 찾은 그곳은 이제 잠깐 들러도 충분한 곳이 되었다. 때로는 나의 웜홀에 남편과 아이도 함께 초대해 즐거움을 만끽해 본다. 동화 속의 할머니가 스웨터를 다 짜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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