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더하기 빼기
금발의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은 우리의 생김새와
너무 달랐다. 산과 들판은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무슨 말 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는 멜로디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 영화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져 폐기처분이 될 때까지 보고 또 보고 그렇게 세월을 같이 보냈다.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고 대답한다.
영화를 처음 봤던 일곱 살.
하얀 피부, 쌍꺼풀 진 큰 눈, 오뚝한 코, 머리에 묶은
리본까지... 이방인의 모습이 낯설기보다는 나도 저렇게 생겼으면 하는 부러움이었다. 어린 눈에도 서양인이 예쁘게 보였나 보다. 조금 더 커서는 대궐 같은 집과 예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도 신기했다. 입주 가정교사라는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조차 흥미로웠다.
우리나라보다 부자라는 미국은 뭐든지 다 화려하고 좋은 것만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어렴풋이 기억에 있는 둘째 외삼촌이 미국에 계셨기에 조만간 나도 동화처럼 예쁜 저곳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깜짝한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 아빠와의 추억’
영화 속의 아빠처럼 우리 아빠도 엄하셨다. 무섭게 혼내서가 아니라 과묵한 성격과 성품이 아빠를 대하는데 조금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다가가기조차 힘든 건 아니었다.
그런 아빠였지만 엄마보다 머리 만지는 솜씨가 좋아서 가끔은 엄마를 대신해 우리 세 자매의 머리 손질을 자청하셨고, 소풍을 갈 때면 손잡고 가게로 데려가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집어도 된다며 통 크게 지갑을 여셨다.
한 여름 바깥에서 노느라 땀범벅이 된 우리들을 불러다 씻겨 쪼르르 뉘어놓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감미로운 음악을 틀어주시는 자상함도 지니셨다.
겉으로는 엄격하지만 속으로는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하시는 아빠의 모습이 영화 속의 아빠와 교차되었다.
닳아 없어진 비디오테이프가 세월이 흘러 음반으로, DVD로 재탄생되었다. 딸이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싼 가격을 마다하지 않고 사들고 들어오셨다. 평상시 연예인 기사로 도배된 하이틴 잡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지만 잡지 속에 성장한 영화 속 주인공들을 인터뷰 기사가 실려있자 두말하지 않고 사주셨더랬다.
이 영화가 내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영화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아빠와의 추억이 듬뿍 깃들어져 있기 때문이지 싶다.
2001년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가 개봉했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우연히 보러 간 극장에서 마리아 선생님을 만났다. 할머니가 된 그녀를 ( 줄리 앤드류스)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무색할 정로로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금발의 짧은 헤어스타일은 알프스 산자락 밑 어느 들판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그 시절의 마리아 선생님이었다.
개봉한 새 영화보다 내 마음속 추억의 영화가 더 떠올랐다.'사운드 오브 뮤직'과 '프린세스 다이어리' 두 편의 영화를 내리 몰아서 봤다. 젊은 시절의 마리아 선생님도 나이 든 제노비아의 여왕님도 모두 반가웠다. 잠시 잊고 지냈던 기억이 되살아나 감동이 밀려왔다. 아직도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분되었다.
1935년 생인 줄리 앤드류스(마리아)와 1929년생인 크리스토퍼 플러머(대령)는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 외에 자녀 역할을 했던 7명의 배우는 연예계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평범한 직장인이 된 사람도,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다.
내가 처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만났던 일곱 살의 어느 날처럼 아빠는 내 딸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똑같이 추억의 영화를 보여 주셨다. 영어를 일찍 접한 아이는 엄마가 엉터리로 불렀던 노래를 제법 비슷하게 흉내를 내며 어린 시절의 나처럼 빠져들었다. 혼자서 유튜브로 노래를 찾아 듣고, DVD가 아닌 외장하드에 저장된 영화를 찾아본다.
이제는 아빠와 나만의 추억이 아닌 나의 딸까지 3대가 같이 보는 영화가 되었다. 먼 훗날 내 딸의 기억 속에도 엄마와 할아버지와 함께한 인생영화가 되어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