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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식 Apr 29. 2021

공명 共鳴, 55살의 영화보기

2. 노매드랜드 Nomadland (2020)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 마을.
엠파이어마을은 샌프란시스코공항으로부터 북동쪽으로 대략 6시간 거리에 있다.



Empire, Nevada. 얼마나 오지인 곳일까. 황량해 보이는 엠파이어마을을 찾아 구글맵을 열었다.


마을전체가 이미지 한 장으로 모두 캡쳐되는 곳이다. 사진 왼쪽을 보면 활주로 두개가 크로스되는데 활주로길이가 거의 마을 전체길이에 맞먹는다. 활주로 바로 오른쪽으로 아마도 주인공이 살았을 몇십채 되지 않는 가옥들이 아주 작은 타운을 이루고 있고, 그 오른쪽으로 영화에서 설명한 석고보드를 만드는 회사 US Gypsum 공장인듯 한 시설물도 보인다. 이게 마을의 전부다. 그리고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마을 남동쪽 아래편으로 10km정도 떨어진 곳에 석고광산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샌프란시스코가 록키산맥 넘어 불과 6시간 정도 거리에 있지만, 이곳은 사막이고 사막이고 또 사막이다. 네바다주니까.


***


여주인공 이름이 'Fern' 이다. Fern은 양치류, 즉 고사리다.


뉴질랜드 국기 (위) 그리고 새 국기 후보 (아래).

뉴질랜드의 정식국기는 영연방국가이므로 영국의 유니언잭에 남십자성이 박혀 있지만, 영연방으로부터 독립된 국가를 원하는 국민정서가 커 현지에서는 마오리족이 특히 아껴오던 식물인 은 고사리를 국기 문양에 담은 깃발을 자주 보게 된다. 몇년전 가보게된 그곳에서 그때 알게된 단어가 바로 'fern' 이다. 


왜 이름이 'Fun 펀' 도 아니고. 굳이 양치류 고사리Fern 일까. 고사리면 안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아주 낯설고 이름으론 처음 듣는다.


자료를 찾아보니 고사리는 양지 음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라지만 토양이 오염되거나 극지방 그리고 사막은 예외다. 그런데 영화의 배경인 엠파이어마을은 네바다사막 한 가운데 석고광산 옆에 있다. 


생명이 사라진 땅, 사막의 석고광산마을에서 Fern은 한 평생을 한 남자와 살았다. 부모도 자식도 없는 남자에겐 그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인 자신이 사라지면 그의 존재마저도 사라질 것이어서 남자가 죽은 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생명을 허락하지 않는 사막의 마을엔, 그리고 그 마을과 석고보드를 만드는 일을 몹시도 좋아했던 남편에겐, 고사리인 Fern 그녀가 유일한 생명이자 사랑일테다.


가족을 뒤로한 채 한 남자와 평생을 사막의 광산마을에서 살아온 한 여인이, 몇년전 남편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 미국의 주택건설 붐이 싸늘하게 식어 버렸을 - 석고보드공장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자 더이상 엠파이어마을에서 살 수 없게 되는 때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그녀는 'van-nomad, 차량유목민'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닌다. 떠나고 싶지만 남편에 대한 기억이 그녀를 반지처럼 묶어두고 완전한 이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이는 아마존 물류창고는 아마도 엠파이어마을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레져도시 Reno 리노가 아닐까. 그녀는 그곳에서 작업을 해서 돈을 벌어 떠나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아마존으로 돌아가 돈을 벌고, 마치 찰리 채플린이 나왔던 영화 현대판 <모던라이프>의 모습처럼 살아간다. 그 밖에도 가리지 않고 온갖 일을 하면서 노매드의 생활을 이어가지만 돈을 벌러 가는 그곳마다 사막의 광산마을 만큼이나 똑같이 생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어느 곳에도 매이지 않게, 매번 다시 떠날 수 있게 하는 밴 차량에 이름을 'vangard, 선봉(장)'이라고 붙였다. 밴-노매드인 Fern이 그 밴에 Vangard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할때부터 영화는 남편을 여의고 직장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어느 여인의 외롭고 침울한 노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남편을 대신할만한 사람과 그의 가족과 그들의 아늑하고 따뜻한 House를 버리고 다시 그녀는 자신의 Home인 뱅가드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 차를 몰고 떠난다.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를 지나 엠파이어마을로 돌아온 그녀가 남편과의 기억이 담긴 가재도구를 모두 처분하고 광활한 네바다의 길 위로 다시 뱅가드를 몰고 밴-노매드의 삶으로 나아갈 것을 암시하는 라스트씬과 함께, 그 장면위로 느리게 그러나 담담하고 또한 확고하게 점점 가슴으로 울려오는 Ludovico Einaudi의 피아노 연주곡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죽은 마을에서 유일했던 생명이자 사랑인 그녀가 스스로의 생을 살고 사랑하기 위해 버려진 마을을 떠나 완전한 유목민의 길로 들어서는 시작이자 출발을 위한 행진곡같이 들린다.


제주도 한라산엔 매년 3~4월이면 온갖 종류의 양치류 고사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Fern은 어디를 가더라도 잘 살게 되리라는 것을 그녀의 이름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양치류 고사리가 버틸 수 없는 불모의 사막에서도 살아낸 그녀는 세상 그 어디에서라도 다시 뿌리를 내리고 포자를 멀리 날려 다시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양치류 고사리는 생명력 그 자체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제주의 곶자왈에서, 제주의 들녘과 한라산 곳곳에서 수없이 만나는 고사리를 그녀의 이름으로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 덧붙임. <노매드랜드>의 여주인공 Fern은 김탁환작가의 신작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의 여주인공 유다정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32VdXGUnUY



#섬도보여행가, #더힐링아일랜드, #강보식, #노매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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