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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dam May 24. 2018

#1 퇴사 후 여행

돈 한 푼 없이 빈털터리로 출국해봤니?

여행 준비는 미리미리 하자!

퇴사일로부터 10일 후에 발리로 떠나는 티켓을 끊었다. 이제는 직장인도 아니니까 10일이면 충분히 여행 준비를 하고도 남을 줄 알았지만 완전히 오산이었다.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들을 만나고 실컷 Netflix를 보고 잔뜩 게으름을 피웠는데(행복했다), 문뜩 정신을 차려보니 여행일이 코앞으로 다가와있었다. 숙소도 일정도 환전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여행일을 2-3일 남기고서 부랴부랴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무려 한 달이 넘는 짧지 않은 여행이라 생각보다 준비할게 많았는데, 여행 전까지 택배가 오지 않을까 봐 모든 준비물은 오프라인으로 사야 했다.  급하게 첫 3일간 묵을 숙소만을 예약하고, 환전 신청하고, 여행자 보험을 신청했다. 동남아 여행에 필수라는 EXK현금카드도 발급받아야 했는데, 가장 유명한 우리은행의 EXK카드는 발급에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해서 당일 발급이 가능한 신한은행 지점을 찾아가서 겨우 발급받을 수 있었다.


또 하나 신경 쓰이는 점은 비행기 티켓 문제. 퇴사하고 간지 나게 편도 티켓을 끊어서 여행을 가는 것은 모두의 로망 아닌가. 그런데 편도 티켓의 사악한 가격은 둘째 치고라도, 편도로 입국 자체가 안 되는 나라가 많다는 게 문제였다. 발리 역시 30일 무비자 입국 국가이기 때문에 편도 티켓 입국은 원칙상으로는 안되며, 입국심사 시 리턴 티켓을 요구할 수도 있고, 없으면 입국 거절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배짱 좋게 그냥 갔다가 걸리면 거기서 사지 뭐! 하고 간 분들도 꽤 있는 것 같았는데, 쫄보인 나로서는 여행 첫날부터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 고민하다가 결국 날짜 변경이 가능한 Out 티켓을 하루 전날 급히 끊었다. 역시 간지 나는 편도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론은 나에게는 Out 티켓을 보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내 비행기는 오후 4시 비행기였는데, 출국 당일 오전까지 빠트린 준비물을 사러 돌아다녔으니 말 다했다. 벼락치기 식으로 여행 준비를 간신히 마친 채 공항으로 향했는데.. 앗! 이어폰을 안 가져온 것이다! 이 사건은 나비효과처럼 여러 사건을 줄줄이 몰아오게 되는데...(여행 준비는 미리미리 합시다)



호환성의 중요성

그깟 이어폰 하나 새로 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나는 아이폰X로 갈아탄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이었다. 일반 3.5파이 이어폰을 쓸 수 없는 점 때문에 폰 구매 시에도 굉장히 망설였는데, 결국 이렇게 나에게 빅엿을 안겨주었다.


공항 가는 길에 있는 애플 제품 샵들에 급히 들러보았지만 라이트닝 케이블 이어폰은 모두 품절이었다.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혼자 여행하는 한 달간 음악을 못 듣는다니, 음악 중독자인 내게는 완전 대재앙이었다. 무선 이어폰을 끔찍이도 싫어해서 에어팟은 고려도 안 했는데, 그 에어팟마저 전부 품절이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나는 왜 아이폰을 샀는가.. 호환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아이폰은 다시는 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초조한 마음에 빨리 면세구역에 들어가서 전자제품 매장들을 찾아다녔다. 정말 다행히도 한 매장에서 라이트닝 케이블 이어폰을 팔고 있어서 간신히 구하고는 여행 시작부터 불필요한 지출이 나간 것에 대해 투덜거리며 한편으로 한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해외여행할 땐 꼭 현금을 가져갑시다

이어폰 사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급하게 면세구역으로 들어오느라 신청해둔 환전을 수령하지 않고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다시 나가는 방법도 있는 것 같았는데, 공항 내에서 인포메이션, 법무부, 항공사 카운터를 뛰어다닌 결과 응급 상황이 아니면 잘 해주지 않는 것 같다. (안된다고 하지는 않는데, 두 시간 넘게 남았음에도 비행기를 놓칠 것이라고 겁을 줬다)


면세구역에도 환전소가 있는데, 현금만 환전할 수 있었고, 면세구역 안에는 ATM이 없다(법이 그렇다고 함). 평소에 카드지갑만 가지고 다니는 터라 한국돈도 한 푼도 없었다. 헉.. 완전히 망한 느낌..! 그래도 내겐 며칠 전 발급받은 신상 EXK 현금카드가 있었으니까, 카드 믿고 출국해 보기로 한다! 발리 공항에서 ATM 찾아 출금하면 되니까! 응 안돼


이어폰 깜빡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멘붕을 겨우 가라앉히고(사실 초월한 느낌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가짐으로 돈 한 푼 없이 빈털터리로 그렇게 비행기를 탔다. 뭐 퇴사도 대책 없이 될 대로 되라고 했으니까 퇴사 여행도 그에 걸맞게 시작된 듯..


EXK 카드가 동남아 만능은 아니었다

밤늦은 시간에 발리 공항에 도착했고, 출국장 문 나서자마자 바로 있는 ATM으로 달려갔다. 아 그런데 나의 유일한 희망인 EXK 현금카드가 출금이 안 되는 것이었다. ATM에서 자꾸 에러가 뜨는데 무슨 에러인지는 안 알려주고(비번 오류인지, 잔고부족인지, 미지원 카드인지..), 시간은 늦었고..


나중에 찾아보니 발리에는 EXK를 지원하는 ATM이 많지 않다고 한다. 말레이 반도, 인도차이나 반도 쪽 국가들에서 쓰기 좋은 카드이고 발리 올 때는 비추이다. 


돈은 뽑지 못했지만 천만다행으로 한국에서 미리 KLOOK을 통해 공항에서 호텔 가는 픽업 택시를 결제해두었다. 그래서 시내에 가서 돈을 뽑기로 하고 일단 호텔로 향했다. 정말 택시를 미리 결제해두지 않았으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뭐 그랬더래도 어떻게든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니까. 항상 계획된 대로 흘러가는 일상에서 벗어나서 돌발상황을 풀어나가는 게 여행의 묘미니까!


(결국 다음날 시내의 다른 ATM에서 다른 체크카드로 돈 뽑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오늘의 교훈

- 발리 편도 입국은 검사를 다 하지는 않아 복불복이지만, 원칙상으로는 안된다.

- 면세 구역 넘어오면 ATM이 없으며, 웬만하면 밖으로 나가기는 거의 어렵다.

- 돈 한 푼 안 들고 여행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이 너무 크니 꼭 챙기세요)

- 발리 올 땐 EXK카드만 가져오는 것은 비추입니다.

- 여행 갈 땐 꼭 이어폰을 챙깁시다. (특히 호환성 똥망인 아이폰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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