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크립톤이라는 먼 별에서 온 이방인이며, 본질적인 의미의 이민자다. 그는 인간 사회에 속하지 않았고, 결코 완전히 속할 수도 없었으며, 영원히 경계 위에 서 있는 존재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경계 위에서 인간을 가장 인간 답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졸데 카림이 『나와 타자들』에서 언급한 것처럼, 타자는 나를 무너뜨리면서도 동시에 나를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다. 슈퍼맨은 타자로서 찬양 받는 동시에 두려움과 오해의 대상이 된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를 경계하고 혐오하며 심지어 파괴하려 한다. 하지만 그러한 혐오는 진정 타자를 향한 것이라 기보다, ‘다름’을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 내면 -극 중 렉스 루터와 같은- 의 불안한 반응에 가깝다. 슈퍼맨(클락)은 그런 오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무거운 시선을 감내하며 말없는 책임의 태도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슈퍼맨 역시 결코 완전하지 않다. 그는 SNS의 악플에 괴로워하며, 전투에서 때때로 패배하고, 타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사랑하는 연인과 다툰다. 바로 그 나약함이 슈퍼맨을 더욱 매력적이고 인간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인간적인 한계와 나약함은 결국 수직 세계의 히어로 영화에서 상승의 필연적인 동력이 되는 ‘추락’이라는 영화적 테마로 연결된다. 슈퍼맨이 겪는 실패와 고통은 그의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며, 이를 통해 그의 영웅적 면모가 더욱 깊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슈퍼맨>이 선택한 연대의 방식은 ‘동일성’이 아니라 ‘다름을 견디는 존재로 서의 공존’이다. 그리고 이 연대는 단지 인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종종 인간을 구할 뿐 아니라, 동물과 자연 등 비인간 존재들 과도 조용히 공명한다. 도시가 파괴되는 거대한 전투 속에서도 강아지 한 마리, 다람쥐 한 마리를 구조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선 다양성과 공존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의 힘은 모든 것을 초월하지만, 그 힘의 진정한 귀착점은 언제나 타자 앞에서의 책임이다. 고통을 지닌 타자 앞에서 슈퍼맨은 스스로 낮아진다. 이 이야기는 신이 인간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가 다른 존재와 마주하는 윤리적 장면이며, 다양성에 대한 섬세한 탐구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동시대의 정치, 문화, 민족적 차이를 초월한 타자와의 관계, 다양성과 연대를 담아내는 철학적 영화로 읽을 수 있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대중적 예술성과 철학적 깊이의 결합이라면, 이 영화는 그 지점의 최고봉에 있다. 덧붙이자면, 영화의 이미지 역시 탁월하다. 주요 장면 하나하나는 마치 섬세하게 그려진 한 폭의 회화처럼 아름답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