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린-8
쓰고, 읽고, 내 글자들이 혐오스러워 종이를 구겨 바닥에 던진다. 이 굴레는 수없이 반복된다.
“영감이 잘 안 떠오르나 보네. ” 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친구 로제다.
“오는 줄 몰랐어.” 내가 말한다.
“어머니가 문 열어주셨어. 얼마나 집중했는지 못 듣는 게 당연해 보이더라.” 로제가 바닥의 종이 뭉치들을 가리키며 덧붙인다. “힘든 날인가 봐. 어쩌면 오늘은 글 쓸 날이 아닐지도 몰라. 그만두고 좀 쉬어.”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내뱉는 참견은 짜증이 난다.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모든 작가는 자신의 문장 속에 자신을 투영하고 창조하며 수많은 피를 흘린다. 그럼에도 결과물이 매번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뭘 알겠는가.
“로제, 네 생각은 그냥 안 들어도 돼.” 내 목소리는 예상보다 더 날이 서 있었다.
“그냥 기분 상해하지 말라고 한 소리야. 에이린, 무슨 일 있어?”
“응, 있어. 너, 우리 가족, 사장님,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 당신들한테 내 작가라는 꿈은 항상 보잘것없어 보이지.”
“에이린,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아무도 네 꿈을 무시하지 않아.”
“됐어 로제, 내가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네. 근데 여긴 왜 왔어?” 내가 물었다.
“괜찮아. 에이린, 난 네 노력을 보고 있고 또 대단하다고 생각해. 알고 있지?”
“알아.”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아니, 아무도 내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가 내가 헛된 꿈을 쫓고 있다고 생각했다. 속으로는 비웃고 있거나, 그저 자기들보다 ‘더 못한 처지’의 표본으로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일은 어때?” 로제가 물었다.
“나쁘지 않아.”
“일이란 게 보통 그렇지 뭐.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됐어, 적어도 네 돈은 벌고 있잖아.”
제발 이 대화가 끝났으면 좋겠다. 마치 사랑하는 일을 쫓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떤 삼각형의 사회가 사각형을 편안하게 받아들여 주겠는가.
“이것 좀 봐. 너 주려고 가져왔어.” 로제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헌책방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어. 작가 이름 좀 봐.” 로제가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에이린 X.” 내가 읽었다. “로제, 내 이름이랑 똑같은 작가가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물론 그렇지. 작가가 누구인지 찾아봤는데, 제2의 알렉토라고 불렸대. 하지만 그만큼 빛을 보지는 못한 모양이야. 네가 그 작가를 좋아했으니까, 이 작가도 좋아할 것 같아서 가져왔어.”
“누구도 제2의 알렉토가 될 수는 없어. 고마워 로제, 읽어볼게.”
제2의 알렉토라니… 신이 나를 놀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누군가 제2의 알렉토가 되어야 한다면 그건 나여야지,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낯선 이가 아니었다.
로제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로제가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집어 들었다.
에이린 X… “부서진 조각들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