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환전, 보이스피싱 연루 후, 구속영장

환율 앱 화면에 남은 마지막 숫자들

by 백수웅변호사

구속영장실질심사 대기실은 늘 비슷한 공기를 갖고 있습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의자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바닥을 한없이 내려가는 그 독특한 정적.

그날도 그랬습니다. 스무 살이 조금 넘은, 마른 체격의 중국인 유학생 K씨가 제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손에 땀이 잔뜩 배어 있었고, 반복해서 같은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저… 중국 못 돌아가면, 부모 얼굴… 못 봐요.”


그가 연루된 혐의는 외환거래법 위반과 전자금융사기, 흔히 말하는 보이스피싱 관련 사건이었습니다. 수사기관은 “불법체류 상태에 가까운, 신분이 불안정한 외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하게 구속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긴급체포까지 했던 사안이었고, 검사는 영장 청구서에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크다”는 문장을 여러 차례 반복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건 기록을 처음 넘겨보던 순간, 머릿속에 맨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정말, 이 사람이 도망을 갈 수 있나?’


사건의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유학생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지인을 통해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 돈을 대신 빨리 환전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그 대가로 소액의 수수료를 받기로 한 것. K씨는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았고, 금융·법률 용어는 더더욱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그 계좌로 들어온 돈은, 누군가의 노후 자금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사업 자금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신고로 계좌는 곧바로 지급정지 되었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던 수사기관은 K씨를 긴급체포했습니다.


긴급체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외국인, 도주 우려 큼. 보이스피싱 조직과 연결된 정황 있음.”


그런데 정작 긴급체포 후 이루어진 조사는 허술했습니다.

통역인은 전문 통역인이 아닌 것 같았다. K씨의 진술 조서는 문장마다 어색한 표현으로 가득했고, 내용은 중간중간 비어 있었습니다.

“이 조서를 근거로 구속을 하겠다고?”

저는 그때 이미, 이 사건에서 진짜 싸워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감을 잡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다툴 때, 저는 늘 한 번 더 꺼내 보는 문서가 있습니다.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

판사들 책상 서랍에도, 제 노트북에도 늘 들어 있는 그 문서 말입니다.


수사기관이 말하는 “도망 우려”는 대부분 막연합니다.

“외국인이다, 불법체류다, 본국에 가족이 있다.”

그래서 저는 예규 제48조, 제49조를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따라 내려갑니다.


이 사람에게는 실제로 도망이 가능한 여권이 있는지,
이미 핵심 증거는 어느 정도 확보되었는지,
한국에서의 학업과 생활 기반이 얼마나 단단한지,
가족과 학교, 지역사회가 그를 잡아 둘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는지를 하나씩 짚어냅니다.


K씨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정식 유학생 비자를 가지고 있었고, 여권은 이미 수사기관이 압수한 상태였습니다.
학교 출석 기록은 성실했고, 등록금은 부모가 어렵게 마련해 보낸 것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과의 접점은


오로지 ‘환전을 도와준다’고 접근해 온 1명의 한국인 브로커뿐이었습니다.


“이 학생이 공항에서 대담하게 출국 심사를 통과해 해외로 도망간다?
오히려 그건 불법체류자보다 더 어려운 길입니다.”


저는 의견서에 그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핵심 논리는 세 갈래였습니다.


첫째, 도망의 물리적 불가능성.
여권 압수로 정상적인 출국이 이미 차단되어 있다는 점,
본국에서는 가족 사정으로 장기간 체류가 곤란하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둘째, 증거 인멸의 불가능성.

이미 계좌 거래 내역, CCTV, 휴대전화 포렌식이 모두 완료되어 있었고, K씨는 단순 계좌 제공자에 가까운 위치로, 보이스피싱 조직의 상선에 접근할 방법도, 의지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인멸할 수 있는 증거 자체가 남아 있지 않다는, 예규 제48조의 가장 첫 번째 문장을 그대로 따라간 주장입니다.


셋째, 체류 자격과 구속 사유의 분리.
“불법체류 가능성”을 이유로 구속을 주장하는 검사에게, 저는 의견서에서 분명히 썼습니다.
“출입국관리법상의 조치는 별도의 행정절차입니다. 형사 구속은 오직 도망과 증거 인멸의 구체적 염려에만 근거해야 합니다.”


구속은, 신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현재 이 사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강제수단이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자주 잊히는 원칙을 다시 끌어올린 것입니다.


영장실질심사 당일, K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판사에게 말했습니다.


“저… 잘못한 거 압니다. 법원 오라 하면 꼭 오겠습니다. 부모님이… 한국까지 올 수 없어서, 저를 믿고 학비 보내줬어요. 도망가면, 제 인생 다 끝납니다.”


그 말은 누가 시킨 멘트가 아니었습니다.
통역을 거쳐 나오는데도, 목소리의 떨림과 숨 고르는 소리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저는 그 옆에서, 준비해 온 자료들을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학교 재학 증명서, 기숙사 계약서, 부모의 송금 내역, 통역의 부적절성을 보여주는 조사 조서, 여권 압수 사실. 그리고 『인신구속사무 예규』의 해당 조항을 조용히 짚어가며, 이 사건이 “추상적인 외국인 위험”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도망·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는 사안”임을 설득했습니다.


결과는 구속영장 기각이었습니다.


판사의 한 줄짜리 결정문 끝에는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불구속 수사 원칙에 반하는 예외적 사유가 충분히 소명되지 아니함”이라는 문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K씨는 그날 저녁, 구치소 대신 원래 살던 작은 원룸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좌에 들어온 돈의 흐름은 분명했고, 외환거래법 위반과 전자금융사기 방조에 준하는 책임은 피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우리의 다음 목표는 하나, “감옥이 아니라 교훈으로 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에서 우리는, K씨의 역할이 조직의 말단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고리였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계좌를 제공한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범죄 구조를 인식한 시점과 그 후의 대응,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가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피해자 일부와의 합의서, 부모가 중국에서 보낸 반성문, 학교 지도교수의 탄원서가 차례로 제출되었습니다.
그리고 1심 선고일,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은 초범이고, 범행의 경위와 이후의 태도,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신분 등을 종합할 때,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로도 충분히 재범을 방지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통역을 통해 그 말을 들은 K씨는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법정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복도에서, 그는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이제… 중국 돌아갈 수 있어요?”


“네. 이번 일에서 배운 걸, 거기서 잘 써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한 가지를 다시 확인합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구속이 너무 쉽게 ‘당연한 수순’처럼 취급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러나 법원 예규와 형사소송법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구속은 항상 예외여야 하고,
도망과 증거 인멸의 염려는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로 증명되어야 한다고요.


K씨 사건에서 제가 한 일은, 거창한 묘수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그 원칙과 문장을, 한 사람의 얼굴에 맞게 끝까지 밀어붙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칙 덕분에, 한 유학생의 청춘은 감옥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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