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위에서 멈춰 있던 한 사람의 시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K씨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가늠하지 못한 눈빛이었다. 중국 국적을 가진 채 국경을 떠돌던 그는, 인신매매 위반 혐의로 구류 처분을 받았고, 난민신청은 이미 “불인정”이라는 글자로 굳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돌아가면… 저는 사라집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탈북민을 은밀히 도운 사실이 그의 본국에서는 곧 처벌의 사유가 되었고, 그가 그 땅에 다시 발을 들이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너무도 명확했다.
그러나 행정청은 그의 사정을 끝내 단 한 번도 ‘인도적 체류’의 언어로 읽어내지 않았다. 구류 전력은 기록으로만 존재했고, 그의 망명 사유는 “난민 요건에 미달한다”는 정형화된 문장 속에 묻혀 있었다. 그날 K씨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문장을 찾아온 듯했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요.”
사건 기록을 처음 펼쳤을 때, 눈에 띈 것은 빈칸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심사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난민 불인정 결정서 어디에도 인도적 체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난민법 제22조가 부여한 심사의무는 그 어떤 문장으로도 흔적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이 사건의 핵심은 난민이 아니라고 하여, 그 사람이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를 세밀하게 검토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탈북민 구조 활동, 국경에서의 체포 경험, 본국에서의 처벌 가능성—그것들은 위험을 향한 단서였고, 법이 보호해야 하는 최소한의 경계선이었다.
행정청은 그의 ‘벌금형 전력’을 근거로 위험성을 주장했지만, 그 주장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난민법이 말하는 ‘중대한 범죄’는 생명·신체를 위협하는 수준의 중범죄를 의미한다. 단순 구류 기록은 그 범주에 닿지 않았다. 그 지점부터 사건은 서서히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전환점은 그의 진술 속 작은 비늘 같은 문장에서 나왔다.
“잡혀간 사람들 중 몇 명은… 지금도 소식이 없습니다.”
그 문장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인도적 체류허가의 요건을 정면으로 지목하는 증언이었다. 난민으로 인정받기에는 구조 활동의 동기와 맥락이 법적 요건에 밀착되지 않았지만, 본국 귀환 시 비인도적 처우를 받을 위험은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중심으로 사건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그가 이곳에 오게 된 경로, 국경에서의 체포, 본국에서의 감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도왔던 사람들을 지켜낸 행위가 어떻게 새 위험을 만들어냈는지까지. 국제인권법의 원칙, 난민협약의 강제송환 금지 조항, 난민법 제2조 제3호의 정의가 그 이야기 속에서 구조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법원은, 행정청이 외면했던 그 위험을 외면하지 않았다. 인도적 체류허가 심사 자체가 누락되었다는 점—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처분은 무너졌다.
판결문이 내려온 날, K씨는 긴 시간을 버티던 사람처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미래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그의 시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아가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에서 자신의 내일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사건을 정리하며 오래 마음에 남았던 생각이 있다. 법은 때로 거대한 구조 같지만, 결국 한 사람의 생명을 어디에 둘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인도적 체류허가는 난민인정의 여지가 없을 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마지막 문장이다. 그 문장을 제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은 결코 임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그 단순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