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 모욕죄, 명예훼손 고소 사례

대자보 앞에 멈춰 선 유학생

by 백수웅변호사

처음 그녀를 만난 날, K양은 땀에 젖은 A4 용지를 구겨 쥐고 있었습니다.


종이 위에는 익숙한 한글과 익숙하지 않은 욕설이 뒤섞여 있었고, 구겨진 자리마다 그날의 복도가 그대로 접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다 읽었어요. 교수님도요.”


조심스러운 한국어 뒤로, 짧은 영어 한 문장이 따라붙었습니다.

“This is not the Korea I knew.”


K양은 한국의 한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여자 유학생이었습니다. 가해자는 같은 학교 남자친구였던 사람. 헤어진 뒤부터 그는 학과 게시판 대자보에 K양의 실명과 국적, 전공을 적어 넣고 성적 농담과 인종차별적 표현을 섞어 붙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두고, 캡션에는 “저런 여자를 다시는 만나지 마라”는 말이 여러 언어로 반복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미 상당수가 찢겨 나가고 삭제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호기심으로 사진을 찍어갔고, 누군가는 조용히 떼어내 버렸습니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시간은 곧 증거였습니다. 나는 상담실 테이블에 펼쳐진 캡처 파일들을 하나씩 넘기며, 머릿속으로 형법과 정보통신망법 조문을 동시에 짚어 나갔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세 가지였습니다.

누가 이 글을 썼는지, 이 글이 누구를 향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퍼졌는지.


남자는 이미 예고하듯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쓴 거 아닙니다.”

“사실을 쓴 거고요, 다른 남학생들 보호하려고 한 겁니다.”


작성 부인, 허위성 부정, 공익 목적 주장. 명예훼손 수사에서 자주 보는 세 줄짜리 방어 논리였습니다.

우리가 먼저 한 일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K양과 친구들이 찍어 둔 사진을 다시 요청해, 게시물 전체가 보이는 화면, URL 주소창, 게시 시각, 조회수까지 포함해 재정리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경우, 팔로워 수와 공개 범위를 확인해 공연성을 입증할 자료를 따로 모았습니다.


“대자보는 이미 내려갔는데요, 괜찮을까요?”
“내려가기 전에 누가 봤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미 봤다면, 글은 존재했습니다.”


특정성은 오히려 어려운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실명, 국적, 전공, ‘외국인 여자친구’라는 표현, 얼굴이 나온 사진까지. 같은 학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K양을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판례가 말하는 “주위 사정을 종합했을 때 피해자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를 충분히 넘어서는 정도였지요.


다음은 피의자 측이 예상대로 꺼내 들 “작성자 부인”에 대한 준비였습니다.

그가 쓴 카카오톡 메시지, “오늘 붙인 거 봤어?”라며 친구에게 보낸 사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가 지운 흔적까지. 평소 그가 쓰던 말투와 욕설의 패턴, 대자보에 등장하는 독특한 표현이 카톡 대화와 거의 같다는 점을 도표로 정리했습니다.


“같은 와이파이를 쓰는 사람은 많다”는 말에는, 계정의 실명 인증 내역과 연락처, 로그인에 사용된 기기 정보, 그리고 대자보를 붙인 시각과 그가 캠퍼스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출입 기록이 함께 맞섰습니다.

“계정 도용일 수도 있다”는 말에는, 바로 전날까지 그 계정으로 K양에게 보낸 이별 메시지가 차분히 반박이 되었습니다.


허위성 문제는 더 복잡했습니다. 글에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었습니다.

“여러 남자와 동시에 만났다”는 표현은 주변인 진술과 전혀 맞지 않았고,
“장학금을 속여서 받았다”는 주장은 학교 행정실의 한 줄짜리 회신으로 깨졌습니다.


나는 수사 기록에 이런 문장을 남겼습니다.

“설령 일부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성적 비하와 인종차별적 표현이 섞인 이 게시물의 목적은 공익이 아니라 철저한 보복과 모욕에 가깝습니다.”


형법 제307조, 제311조, 정보통신망법 제70조를 함께 적시하면서도, 이 사건의 실질을 “헤어진 연인에 대한 보복”으로 요약했습니다. ‘다른 남학생을 보호하기 위해’라는 피의자의 주장은, 공익 목적이 아니라 비방 목적을 강조하는 증거에 가까웠습니다.


K양이 조서 작성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통역인을 배석시키고 진술서를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로 준비했습니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명하는 일이 없도록, 한 문장씩 다시 확인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한국 법원이 말해 줄까요?”


이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건은 언제나 법리와 사실 사이 어딘가에 머뭅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이에 떨어져 나가는 문장 하나 없이 기록을 채워 넣는 일이었습니다.


몇 달 뒤, 남자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및 형법상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판결문은 인종차별적 표현과 성적 모욕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현저히 저하시키는 내용”이라고 명시했고, 공익 목적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형사절차가 끝난 뒤 우리는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K양에게 위자료 지급을 명했습니다. 액수가 크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판결문을 받아 들고 조용히 웃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계속 공부해도 될 것 같아요.”


명예훼손 사건의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문과 판례가 아닌 얼굴과 표정이 먼저 떠오릅니다. 특정성과 공연성, 허위성과 공익성이라는 말 뒤에는, 언어가 무기가 되었던 순간과 그날 대자보 앞에 멈춰 서 있던 누군가의 뒷모습이 늘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법리로 다투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내일을 조금 덜 흔들리게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


외국인 명예훼손·모욕관련 고소장 작성 - 법률.. : 네이버블로그

매거진의 이전글외국인 혼인무효 소송 후, 체류자격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