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지 말라는 말의 무게
처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A는 의자에 앉자마자 한참을 말없이 손만 만지작거렸다. 한국말이 유창했지만, 그날만큼은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사장님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 말이 전부였다. 서류도, 문자도 없었다. 목소리로만 남은 해고였다.
A는 한국에서 몇 해째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였다. 성실했고,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는 어느 날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워 두세 문장으로 관계를 끝냈다.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냥,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느낌이었다”고 A는 말했다. 그는 그것이 해고인지, 권고사직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그렇듯, A 역시 근로기준법 제27조를 알지 못했다. 해고는 반드시 사유와 시기를 적은 ‘서면’으로 통지되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구두로 “나오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법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절차는 장식이 아니라, 해고의 성립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회사는 A에게 권고사직서를 내밀었다. “이렇게 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진실도 아니었다. 외국인인 A는 고용보험이 임의가입 대상이었고, 실제로는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권고사직서에 서명하는 순간, 그는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전환점은 아주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됐다. “내일도 출근하세요.” A는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회사 문 앞에 섰다. 출입이 막히면 사진을 찍고, 업무를 주지 않으면 시간을 기록했다. 인사 담당자에게는 짧은 문자를 보냈다. 정상 출근했으나 업무를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계속 근로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 문장은 감정이 아니라, 법적 의사표시였다.
며칠 뒤, 내용증명이 발송됐다. 해고 통보의 경위,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 그리고 복귀 요청. 그 한 장의 종이는 이후 분쟁에서 A가 ‘일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회사가 기대했던 ‘무단결근’이라는 새로운 해고 사유는 설 자리를 잃었다.
결과는 조용히 정리됐다. 서면 해고 통지가 없었다는 점, 정당한 해고 사유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이 인정되었다. A는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받았다. 실업급여 대신, 더 확실한 회복이었다.
사건이 끝난 뒤 A는 말했다. “아무것도 몰랐으면 그냥 집에 갔을 거예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모를 것이라는 이유로 쉽게 선택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법은 국적을 묻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을 ‘아느냐’와, ‘말할 수 있느냐’다.
이 사건은 거창한 판례를 남기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의 출근 기록과, 보내지지 않았어야 할 권고사직서 하나가, 침묵 대신 선택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결과를 바꿨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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