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사건을 하면서, 나는 가끔 판타지를 꿈꾼다.
요즘 유난히 마음이 붙드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프로보노.
대사는 솔직히 조금 간지럽다. 법정에서 정의를 말할 때의 눈빛과 호흡, 모든 장면이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져 있다. 보면서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왜 나는 저렇게 못했을까. 그리고 또 하나. 법정에서는 저 정도로 당당해야 하는데. 드라마 속 강다윗은 판타지다. 현실에는 잘 없다.
나는 그와 같은 공익변호사가 아니다. 영리를 추구한다. 그렇다고 상업적인 변호사라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어색하다. 내가 서 있는 지점은 그 중간쯤이다.
공변과 상업 변호사의 사이. 가격도, 태도도, 방향도 그 어딘가를 지향한다.
어쏘 변호사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무난하게 하면, 무난하게 진다.”
내 사건 대부분은 외국인 사건이다. 그리고 상대는 거의 항상 ‘관’이다. 출입국, 행정청, 국가. 관과 싸워서 이기는 일은 쉽지 않다.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건의 출발선은 이미 뒤로 밀려 있다. 판사들 역시 대부분은 기계적이다.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문장으로 판단한다.
가끔은 있다.
서면에 적은 문장이 판사의 눈을 붙잡는 순간.
논리보다 문장에, 문장보다 맥락에 잠시 취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모든 문장은 그냥 개소리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싸우려고 한다.
법 조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너무 많이 봤다. 때로는 민원인처럼 출입국 사무소에 직접 찾아간다. 창구 앞에서 버틴다. 지원과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체면도, 품위도 내려놓는다. 멋있지는 않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기계적인 패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공익변호사가 아니다. 그렇게 살 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대적 약자를 돕는 일이 즐겁다. 그래서 그냥 한다. 대단한 사명감도 없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포부도 없다. 다만, 내 눈앞에 있는 이 사건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있을 뿐이다.
퍼포먼스는 부족하다.
법 실력도 뛰어나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몸으로 때운다. 발로 뛰고, 말로 싸우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모두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과정만큼은 누군가 알아준다면 충분하다. 그걸로 나는 행복하다.
나는 좋은 변호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냥 그런 변호사다.
기계적으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나는 존경하지 않는다.
법은 고민의 산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한 번쯤은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서면에 법리만 쓰지 않으려 한다. 사회의 문제를, 구조를,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를 함께 쓰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보노는 내게 인생 드라마다.
강다윗은 판타지다. 하지만 외국인 사건에는 그 판타지가 필요하다. 기계적 판단을 흔들고,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드는 힘.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가능하게 만드는 상상력.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에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판타지를 믿지 않으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서면을 쓴다. 결과가 아니라,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외국인 사건의 첫 번째 목표이기 때문이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