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 보이스피싱 지급정지 후 무죄 사례

지급정지라는 단어 앞에서

by 백수웅변호사

계좌가 멈췄다는 문자를 처음 받았을 때, K씨는 한동안 화면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잔액이 아니라, 숨이 막혔다.

대출을 알아보던 과정이었다. 임대차보증금 날짜는 다가오고, 선택지는 줄어들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계좌가 지급정지되었다는 알림은, 자신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날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경찰서를 향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이 모든 것을 갈랐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급하게 자금이 필요했던 K씨는 SNS에 게시된 소액대출 광고를 보았다. 조건은 그럴듯했고, 말투는 친절했다. 상대는 “외환 거래 실적이 있어야 대출 승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 설명은 낯설었지만, 너무 절박했던 탓에 이상함을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조직은 K씨 명의의 계좌로 돈을 보내왔고, 이를 달러로 환전해 전달해 달라고 했다.
은행 창구에서 목적을 묻는다면 “하와이 배낭여행 자금”이라고 말하라는 지시까지 덧붙였다.
이 모든 과정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분명해졌다.


K씨는 단 한 번, 지시를 따랐다.
보수는 없었다.
그가 받은 것은 ‘곧 대출이 승인된다’는 말뿐이었다.


그리고 계좌는 곧 멈췄다.

실무에서 이런 경우, 계좌 명의자는 종종 인출책으로 의심받는다.
피해자임에도 피의자로 입건되는 순간이다.

이때 대부분은 침묵하거나, 뒤늦게 대응한다. 그러나 K씨는 달랐다. 지급정지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경찰에 신고했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고, 기록을 남겼다.


이 사후 행위는 재판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가졌다.

재판부는 외형상 의심스러운 정황이 충분히 존재함을 인정하면서도, 한 가지 질문을 놓치지 않았다.
과연 K씨에게 범죄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가.


판단은 단순하지 않았다.
임대차보증금이라는 현실적인 압박, 사회초년생이라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저하된 판단력. 재판부는 경제적 궁박 상태에서 사람의 이성이 얼마나 쉽게 흐려질 수 있는지를 직시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바로 그 지점을 노렸다.
비정상적인 자금 흐름과 거짓말 지시를 ‘대출 절차상 필요한 편법’으로 포장했다. 재판부는 정상적인 대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에 현혹된 상태라면, 은행에서 거짓말을 하라는 지시 자체를 범죄의 신호로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


궁핍과 기망이 결합되면, 판단력은 무너질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사건 이후의 태도였다.

지급정지 직후, 즉시 경찰에 신고한 행동.

재판부는 만약 범죄 인식이 있었다면 도주하거나 연락을 끊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신고라는 선택은, 그가 공범이 아니라 이용당한 피해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없이 증명했다.

가담은 단 한 차례였다.
보수는 없었다.
반복성도, 계획성도 없었다.

결론은 무죄였다.


이 판결은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은행에서 거짓말을 했는가’라는 단편적인 사실만으로 고의를 기계적으로 추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경제적 절박함 속에서 설계된 사기는, 누구든 판단 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리고 범행 이후의 선택, 특히 지급정지 직후의 신고는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피의자가 피해자로 인정될 수 있었던 이 예외적인 사례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도망치지 않은 사람의 선택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외국인 형사사건 연루 시, 집행유예가 최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