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테러

대통령의 피습, 그리고 테러라고 규정하다

민주당은 왜 테러방지법을 반대했을까?

by 백수웅변호사

가덕도에서 벌어진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피습사건을 정부는 ‘테러’라고 규정했다.


뉴스 자막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이라기보다 당혹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테러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장면과, 그날의 상황 사이에는 쉽게 메워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을 찾아보면 정부의 판단이 완전히 엉뚱하다고만 할 수도 없다.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거나, 공중을 협박할 목적의 폭력 행위로 정의한다. 조문만 놓고 보면,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인물을 겨냥한 폭력은 얼마든지 ‘테러’로 분류될 여지가 있다. 요인테러이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이다.


이 법이 만들어질 당시, 가장 강하게 그 위험성을 경고했던 쪽이 누구였는가.


테러방지법 제정 당시, 민주당은 필리버스터까지 동원하며 반대했다.

그 핵심 논리는 분명했다.


첫째, 정치적 반대 행위가 ‘테러’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

둘째, ‘대테러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테러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넓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권력자가 불편해하는 행위가 언제든 체제 위협으로 재분류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테러로 지정되는 순간, 문제는 범죄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때부터는 형벌보다 권한이 앞서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치적 상징성이 극도로 큰 사건이 발생하자, 그 논리를 가장 먼저 부정하는 쪽이 바로 그들이 되었다. 과거에는 위험하다고 했던 ‘정치적 목적의 테러’ 개념이, 이제는 너무도 쉽게 호출된다.


이 장면이 아이러니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과거에 반대했던 바로 그 논리가, 지금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향한 폭력은 이미 형법과 개별 법률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


굳이 ‘테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법적 공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러라는 표현을 선택하는 순간,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성격이 바뀐다. 그리고 그 성격 규정은 언제든 선택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테러활동’이라는 말의 확장성이다.


테러로 지정되는 순간, 수사 방식과 정보 수집, 국가의 개입 수준은 완전히 달라진다.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정치적 의사표현은 자연스럽게 위축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테러방지법은 오래전부터 “폭력보다 권한이 더 무서운 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은 씁쓸하다.


한때는 헌법과 자유를 말하던 언어가, 이제는 국가안보와 테러라는 단어 속으로 너무 쉽게 미끄러져 들어간다. 정치적 입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법의 위험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사건의 명칭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묻고 있는 질문은 훨씬 근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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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란 무엇인가. 그리고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 이름을 붙일 권한을 갖는가.


과거의 말과 현재의 행동이 이렇게 어긋난다면, 국민이 느끼는 허탈감은 당연하다.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사건이 가벼워서가 아니다. 정치의 언어, 그리고 법의 언어가 너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말은 무거워야 한다.

특히 법의 언어라면 더더욱.


정치적 논란을 떠나 그냥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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